청와대브리핑 ‘역대선거 수도이전 공약땐 침묵’의 허구

‘청와대 브리핑’(7월 9일자)은 동아 조선일보를 비판하면서 ‘역대 정권마다 행정수도 이전을 거론하고 단골 선거공약으로 내세웠으나 그때는 왜 가만히 있었느냐’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역대 선거 당시의 수도 이전 관련 내용을 살펴보면 청와대의 주장은 억지에 가까운 것임이 명백히 드러난다.

▽본격적인 행정수도 이전 공약 없었다=역대 정권 또는 대선후보들이 행정수도 이전을 거론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박정희(朴正熙)-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행정수도 이전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지 않았다. 중앙행정기관 가운데 외청을 중심으로 한 일부 기능의 이전이거나 대전지역 표를 겨냥한 단발성 공약에 불과했다. 당연히 실행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흐지부지됐다.

내용이 다른 만큼 동아일보를 비롯한 대부분 신문기사도 박-노 대통령의 행정수도에 대한 기사와는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 정부 발표나 대선 공약을 간단하게 소개하는 기사만 썼다.

▽역대 정권의 관련공약 분석=가장 먼저 제기한 것은 1971년 신민당 대선후보로 나선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었다. 김대중 당시 후보는 대전 유세에서 “집권하면 대전을 행정 부수도(副首都)로 정하겠다”며 “1단계로 행정부 외청, 2단계로 일부 행정부를 순차적으로 옮기겠다”고 공약했다. 행정수도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고 정부부처를 모두 옮기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전두환(全斗煥) 정부는 85년 1월 “대전을 행정중심 기능도시로 육성한다”고 발표했다. 이전 대상은 중앙부처로는 과학기술처 국가보훈처뿐이었고 조달청 전매청 철도청 등의 외청들이 거론됐다. 이듬해 5월에는 85년 8월까지 ‘대전행정타운’에 정부 제3청사 설계를 완료하겠다고 발표했다. 청와대나 정부부처는 물론 국회 법원 등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은 90년 2월 대전시청 업무보고에서 “정부는 가능한 한 많은 중앙행정기관의 대전 이전을 추진하고…”라고 말했다. 이전 대상은 청 단위 중앙행정기관 일부에 불과했다. 동아일보는 90년 10월 28일 심층취재 기사를 통해 ‘대전-중부핵 발돋움’이라는 긍정적 면과 함께 ‘투기붐과 땅값 폭등’이라는 부정적 면을 지적했다.

92년 11월 김영삼(金泳三) 민자당 대선후보는 대전 유세에서 “11개 중앙행정기관 이전을 통해 대전을 제2행정수도로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이전 대상이 10여개 기관에 불과한 데다 ‘제2’란 말에서 보듯 행정수도 ‘이전’이 아니라 기능분산이었다.

이 계획은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던 98년 조달청 철도청 등 10여개 외청(공무원 3900여명)이 이전함으로써 결실을 봤다. 역대 정권의 숱한 계획이나 대선 공약 중 유일하게 실행된 경우지만 ‘행정수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소규모였다.

▽‘청와대 브리핑’의 오발탄=청와대 브리핑은 “92년 민자당의 김영삼 대통령, 97년 신한국당의 이회창 후보도 행정수도 이전이나 제2행정수도 건설을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다”며 당시에 비해 왜 이번에만 큰 관심을 쏟느냐고 보도의 ‘일관성’을 문제삼고 있다.

김영삼 후보의 ‘일부 외청 이전’과 사실상 천도 개념인 노무현 대통령의 ‘행정수도 건설’은 같은 비중으로 다룰 수 없는 사안이다.

97년 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대선후보는 ‘정부기관의 과감한 민간위탁 및 지방이양, 효율적이고 강력한 정부 구현’이라는 공약집 내용에서 보듯 행정수도라기보다는 정부 기능의 재조정을 통한 중앙정부 슬림화를 주장했을 뿐이다.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

역대 정권과 대선후보들의 행정수도 관련 발표 또는 공약
주체	시기	내용
김대중 신민당대선후보	71년 4월 3일 대전 유세	대전행정부수도. 1단계로 행정부 외청, 2단계로 일부 행정부 순차 이전
전두환 정부	85년 1월 4일 발표	대전을 행정타운으로 만들고, 과학기술처 국가보훈처 조달청 전매청 철도청 등 2개 부처 및 외청 일부 이전 계획
	87년 5월 9일 발표	85년 8월까지 대전행정타운에 정부 제3청사 설계 완료, 외청 중심의 12개 중앙행정기관 이전 계획
노태우 정부	90년 2월 16일 대전시청 업무보고	가능한 한 많은 중앙행정기관의 대전 이전 추진 계획
	91년 3월 12일 발표	부산-국제금융, 대구-패션산업, 광주-첨단산업, 대전-행정기능 중심 도시로 육성 계획
김영삼 민자당 대선후보	92년 11월 17일, 12월 7일 대전 유세	11개 중앙행정기관의 대전 이전을 통한 제2행정수도 공약
김영삼 정부	93년 9월 7일	대전의 정부 제3청사 기공식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	97년 공약집	정부 기관의 과감한 민간 위탁 및 지방 이양
김대중 정부	98년 7, 8월	철도청 조달청 등 10여개 청 단위 이하 중앙기관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