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순덕 칼럼]생각의 아파르트헤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04년 7월 16일 18시 49분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WMD)를 갖고 있다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분석은 틀렸다는 결론이 나왔다. 허탈하다. 세계를 뒤흔든 전쟁이 고작 잘못된 정보 때문이라니.
더 허탈한 건 그 원인으로 지목된 게 사람도 제도도 아닌 집단사고(集團思考·group think)라는 데 있다. CIA라는 집단이 이라크가 WMD를 가졌다는 가정 아래 이에 맞는 정보는 부풀리고 안 맞는 건 덮었다니까 결론은 뻔할 수밖에 없다.
CIA의 비극은 남의 일 같지 않다. 파병을 앞두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같은 오류를 빚을 수밖에 없는 여건이 이 나라에도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 억압하는 집단思考▼
우리 집단은 선한 의도로 뭉쳤으므로 일이 잘못될 리 없다, 도덕적인 결정이므로 우리가 하는 것은 옳다, 반대는 불충(不忠)이며 홍보만 잘되면 문제는 사라진다, 그러고도 비판하면 적이다.
집단사고의 개념을 처음 도입한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가 꼽은 특징이다. 이런 증상을 보일수록 그 집단이 내린 결정은 나빠진다고 했다.
참여정부 집권층과 무서우리만치 흡사하다. 천도(遷都) 논리만 봐도 그렇다. 우리는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뜨거운 맹세를 했던 산 자들이다, 나라를 균형발전하자는 게 뭐가 잘못이냐, 공무원 동원해 공청회장을 채워라, 이에 대한 반대는 정권퇴진운동인데 서울 한복판에 거대빌딩을 가진 신문사가 주도한다….
집단사고는 이상한 머리에서 나오는 게 아님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좋은 의도를 지닌 유능한 개인도 끈끈한 집단에선 멍청한 결론을 낸다. 여기엔 리더의 영향이 크다. 리더의 신념이 나쁘달 순 없다. 단 그게 잘못될 수도 있음을 인정하기는커녕 되는 쪽으로만 사고하라며 비판을 용납하지 않을 때 문제는 복잡해진다.
수도 이전 반대가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이라니, 표현은 부드럽지만 결국 반역이란 얘기다. 극단주의는 특정종교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자기만 옳고 남은 틀리다는 ‘코리아 극단주의’가 꿈틀거린다. 목숨 걸고 민주화투쟁 했다는 집단이 권위주의적 정권으로 달려가는 모습은 보기에도 참담하다.
집단사고가 집권층만의 일이라면 국민은 마음 편히 살 수도 있다. 하지만 대선을 거치면서 대통령에 대한 호오(好惡)에 따라 집단사고는 일상이 됐다. 의견이 같은 사람끼리만 뭉치고 견해가 다르면 상종 못할 사람으로 치는 ‘생각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인종격리정책)’다. 국토분단에 가슴을 쳐온 사람들이 또 다른 분단엔 앞장서는 게 놀랍다.
이 새로운 장벽이 서는 데는 정보화시대가 큰 몫을 했다. 다양한 정보가 담긴 종이신문에선 보기 싫은 내용도 눈에 뵐 수밖에 없지만 인터넷은 다르다. 마음에 맞는 정보만 보고 싫으면 정보도, 현실도 외면한다.
민주주의란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한 정보에 노출되느냐에 달렸다는 카스 선스타인 시카고대 교수의 주장이 맞는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위기다. 선전 선동에 그치지 않고 의견이 다르면 죽일 듯 달려드는 인터넷공간이 그 표본이다. 입에 담기 무엄하지만 이런 양상을 부추긴 건 친노(親盧) 인터넷매체를 싸고돈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아니다’를 막으면 재앙이 된다▼
집단사고의 재앙을 막는 방법은 있다. 집단내부에 반대를 업으로 삼는 데블스 애드버킷(devil's advocate)을 두는 거다. 결속력 강한 집단일수록 리더의 의중대로, 보다 강경하게 치닫는 법이므로 누군가 “아니다”고 말하게 하는 장치를 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그러나 전문가의 고언을 깔아뭉개는 게 이들 집단의 특성이다. 비판적 언론은 그래서 필요하다. 대통령과 정부는 일정기간 국정운영을 위임받았지 국가를 소유한 건 아니다. 어떤 정권이 들어앉아도 감시와 비판을 하는 것이 언론의 본분이다. 그런 언론이 밉다고 재갈을 물린다면 그 정권에 희망은 없다.
그리스신화 속 트로이는 목마를 성에 들여놔선 안 된다던 예언자 카산드라를 무시했었다. 카산드라는 지금 여기서도 울부짖고 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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