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L 침범보고 재조사]北 거짓말엔 침묵…보고만 문제삼나

  • 입력 2004년 7월 19일 18시 55분


정부 합동조사단(단장 국방부 박성조 동원국장·육군 소장)의 ‘서해 핫라인 허위보고’ 사건 조사가 19일로 4일째 진행되면서 사건의 윤곽이 차츰 드러나고 있다.

▽서해상의 해군작전=합조단의 첫 조사 대상은 해군 함정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의 무선호출을 무시하고 2발의 경고 함포사격을 가한 것이 적절했는지 여부.

합조단은 북한 경비정이 14일 오후 4시48분 해군 함정의 세 차례 경고방송에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

2002년 서해교전 이후 바뀐 해군의 교전수칙은 ‘시위기동-경고사격-조준격파사격’ 등 3단계. 다만 지난달 15일 남북 함정간 핫라인이 개통된 이후엔 시위기동과 동시에 경고방송을 하게 돼 있다.

해군 함정은 북한 경비정의 무응답 상황을 2함대사령부 상황실을 거쳐 사령관에게 보고했고 2함대사령관은 4분 후인 4시52분 경고사격 명령을 내렸다.

사격명령이 내려지기 바로 직전 북한 경비정으로부터 “중국어선이 남하 중”이라는 호출이 있었으나 해군 함정은 북측 호출에 남북이 약속한 ‘한라산(남), 백두산(북)’ 등 호출신호가 없었고 북한 경비정이 계속 남하했기 때문에 이를 무시하고 경고사격을 가했다.

더욱이 당시 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은 2002년 서해교전에서 우리 고속정을 공격했던 ‘등산곶 684호’로 확인돼 현장의 해군 함정은 비상태세로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보고상의 문제점=북한의 NLL 침범 시 2함대사령부 상황실은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과 해군작전사령부(해작사)에 동시에 보고하게 돼 있다.

이에 따라 2함대사령부는 해작사에는 북한의 호출 사실이 포함된 NLL 작전상황을 보고했으나 합참 지휘통제실에는 북한의 호출 사실을 뺀 작전상황을 보고했다. 해작사는 또 지휘통제실에 확인보고를 할 때도 북한의 호출 사실을 누락했다.

해작사측은 “계속 남하하는 북한 경비정의 호출은 속임수였고, 경고사격으로 작전이 종결됐기 때문에 불필요한 정보라고 판단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해군 관계자는 “14일 밤부터 언론에 북측의 무응답 보도가 나왔는데 해작사가 왜 합참에 정정 보고하지 않았는지가 가장 의문이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보고체계의 또 다른 허점은 합참 정보부대에서 드러났다. 14일 대북통신감청부대가 남북 함정간 통신을 포착해 사건 11분 뒤인 5시12분경 합참 정보융합처에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합참 정보융합처는 ‘북한의 호출이 거짓인 데다 동문서답식이었다’며 정보본부장에게 이를 보고하지 않았다.

결국 북한의 호출 사실은 합참 작전본부, 정보본부 양측에서 보고되지 않은 가운데 15일 정오 이후 국가정보원이 파악해 청와대와 국방부에 통보하는 일이 발생했던 것이다.

▽북한의 거짓말=‘14일 NLL을 침범한 선박은 중국 어선’이라는 북한의 주장은 거짓으로 판명됐다.

해군과 군 정보기관은 북 경비정들의 근무순번, 이동경로, 통신정보를 모두 파악해 NLL을 침범한 선박이 ‘등산곶 684호’인 것까지 확인했다. 또 해군 함정이 경고사격을 한 대상도 중국 어선이 아니라 북 경비정이며, 함포 2발이 북 경비정 900m 앞에 떨어진 것도 밝혀졌다.

따라서 북한이 남북간에 우발적인 무력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운용키로 합의한 핫라인을 통해 남측을 혼란시키는 거짓말을 한 사실이 명백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의도적인 속임수를 비판하는 대신 군 내부의 보고체계에 허점이 있음을 강조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지적이 많다. 군 내부에서 “북한의 거짓말에는 주목하지 않고, 군의 보고 실수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우려의 소리가 나오는 것은 이 같은 맥락에서 일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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