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소매 티셔츠 차림의 간편한 복장을 한 두 정상은 불볕 더위 탓에 태극부채를 들고 연신 부채질을 했다. 산책 도중 고이즈미 총리는 내리막길에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 했으며, 한동안 절뚝거리며 걸었다.
두 정상은 영화 '쉬리'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쉬리 벤치'에 앉아 이 영화를 화제에 올렸다.
노 대통령이 "영화는 봤는데, 이 벤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자, 고이즈미 총리도 "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영화를 보면서 남북간의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두 정상은 "날씨가 더워지면 에어컨이 많이 팔리는 등 내수 경기에 영향을 미친다"는 등 경제와 관련된 가벼운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산책로에서 돌아오는 도중에 한국으로 가족과 휴가를 온 일본 어린이가 고이즈미 총리에게 인사를 했고, 이를 계기로 노 대통령은 "저 또래 (귀국)아이들과 우리나라 아이들이 같은 역사를 다르게 배우고 있다"면서 과거사 문제를 푸는데 있어 고이즈미 총리의 결단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편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이 과거사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다고 한 것을 두고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굴욕외교"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김영선(金映宣) 최고위원은 상임운영위원회의에서 "신사참배와 같은 도발을 하는 것이 일본인데, 국가원수로서 제 입에 자물쇠를 채우는 발언은 옳지 않다"며 "국내에 대해서는 오기정치를 하면서 외국에는 굴욕외교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원희룡(元喜龍) 최고위원은 전날 공동회견에서 노 대통령이 일본 기자의 질문을 그대로 받아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표현한 것을 가리켜 "쉬리의 언덕에서 왠 다케시마냐"라고 비판했다. 김형오(金炯旿) 사무총장도 "정부가 친일진상규명법은 확대하면서 막상 일본의 과거 침략행위에 대해선 입을 닫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가세했다.
서귀포=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