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의원들의 ‘개혁 입법’ 발의 경쟁에 청와대가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열린우리당이 추진 중인 의문사법 개정과 국가보안법 폐지 움직임 등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면서 당에 공식적인 협의를 요청하고 나선 것. 이에 따라 당-청간에 미묘한 갈등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23일 오전 7시반 청와대에서 홍재형(洪在馨) 정책위의장, 안영근(安泳根) 안병엽(安炳燁) 유시민(柳時敏) 의원 등 정책조정 1, 3, 4위원장과 김병준(金秉準) 대통령정책실장, 김영주(金榮柱) 정책기획, 문재인(文在寅) 시민사회수석비서관, 한덕수(韓悳洙) 국무조정실장 등이 참여하는 당-정-청 정책협의회를 개최한다.
이날 협의의 주요 의제는 의문사법 개정안과 국보법 처리 방향으로 청와대가 공식적인 논의를 요청해 옴에 따라 열리게 됐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발의하고 있는 각종 개혁 법안 중 상당수는 그 자체로 과거의 패러다임과 상식을 뛰어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충분한 협의와 공감대가 이뤄져야만 추진할 수 있는 사안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충분한 공감대 형성 과정 없이 정제되지 않은 안(案)과 입법 방향을 앞 다퉈 발표하고 있어 여권 내에서조차 혼란스럽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이에 따라 의원 입법의 경우에도 발의를 하기 전에 당 정책위원회에 사전 신고를 하거나 최소한 정책위원장에게 구두보고를 할 것을 의무화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다.
▼국가보안법▼
▽국가보안법 처리=아직 당론을 정한 상태는 아니지만 신기남(辛基南) 의장과 한명숙(韓明淑) 상임중앙위원 등 당 지도부가 폐지를 주장하고 있고, 천정배(千正培) 원내대표도 16대 국회에서 폐지법안을 주도한 바 있어 당의 전반적인 기류는 폐지 쪽에 무게가 실려 있다.
신 의장은 21일 임종석(任鍾晳) 의원이 주도한 국보법 폐지를 위한 간담회에 참석해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국보법은 사실상 사문화됐으며 폐지해야 한다”며 “연내에 국보법 개폐 문제를 마무리 짓겠다. 천 원내대표와도 이 점에 관해 합의했다”고 밝혔다.
임 의원 등은 국보법 폐지 입법추진위를 구성하고 8월 중 태스크포스 및 당정협의를 거쳐 법률안을 제출한 뒤 9월 정기국회 때 처리한다는 세부 입법 일정을 마련했다.
청와대는 국보법 폐지에 대해서 명확히 입장을 표명하지는 않았지만 폐지 논의는 신중해야 하며 충분한 국민적 합의와 공감대 속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는 이날 운영위원회에서 “국보법 운영상의 몇 가지 개정은 수용할 수 있지만 폐지는 절대 안 된다”며 “북한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고 국보법 존재 자체가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인데 이마저 무장해제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의문사법▼
3기 의문사위 출범을 앞두고 원혜영(元惠榮) 의원이 마련한 의문사법 개정안은 의문사위의 조사 대상과 권한을 대폭 확대토록 하고 있다. 의문사위가 조사할 수 있는 사건이 ‘의문의 죽음’에서 ‘의문의 사건’으로 넓어지고 금융거래 및 통화기록까지 조사할 수 있는 등 수사기관에 준하는 권한을 갖게 된다.
그러나 청와대는 의문사법을 개정해 의문사위의 조사 대상과 권한을 대폭 확대하는 것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문 수석비서관은 “아직 청와대의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다. 당과 협의한 것도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청와대 내부기류가 부정적인 쪽으로 흐르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열린우리당 정책위 관계자는 “청와대측이 의문사위의 권한과 조사 대상을 지나치게 확대할 경우 이미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사안까지 재조사가 이뤄져 법적 안정성을 해치고 국가기관 사이에 마찰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명했다”고 전했다.
현재 의문사법 개정안은 당 법안심사위원회(위원장 홍재형)에 계류 중이며, 의원총회를 거쳐 당론으로 확정되면 9월 정기국회에서 처리될 전망이지만 청와대의 부정적 기류와 한나라당의 반발까지 감안하면 개정안 처리에는 상당한 진통이 따를 전망이다.
이 훈기자 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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