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정린/軍 사기진작에 힘 모을때다

  • 입력 2004년 7월 25일 19시 47분


북한 경비정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 사태 처리 과정에서 우리 정부와 군, 정치권이 보여 준 모습은 한마디로 혼란 그 자체였다.

23일 정부합동조사단의 최종 조사결과 발표에 따르면 북한 경비정의 송신 여부 ‘허위 보고’ 문제는 ‘단순 판단착오에 의한 보고 누락’에 따른 것이었으며, 이에 대한 문책도 가벼운 경고조치로 끝날 것이라고 했다. 국민과 군 모두를 위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조영길 국방부 장관이 24일 국회에서 ‘보고 누락 원인’의 하나로 “해군작전사령관은 (북한 경비정과의 교신 사실을) 보고할 경우 합동참모본부 등 상급부대에서 사격을 중지하라고 할까봐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혀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작전수행 뒷전 보고누락 추궁만▼

서해 NLL 인근 해상은 2년 전에 북한의 기습공격으로 우리 젊은 장병들이 고귀한 목숨을 잃었던 곳으로 항시 긴장이 감도는 지역이다. 이번에 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은 우리 군이 퇴각을 요구하자 뒤늦게 우리측에 ‘중국 어선이 남하 중’이라고 거짓말을 하다 경고사격을 받고 퇴각한 것으로 NLL을 무력화하려는 계획된 침범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 해군은 작전예규에 따라 북한 경비정에 경고사격을 가해 퇴각시킨, 매우 성공적인 작전을 수행했다고 평가된다.

최전방에서 싸우는 장병들에겐 적의 침범에 대한 대비가 최우선이며 북한군이 송신을 했느냐는 그 다음이다. 더욱이 북한군은 수십 년 동안 늘 기만전술을 써 왔다. 이번에 북측이 뒤늦게 거짓 통신을 보내 온 것에서 보듯, 남북 장성급회담에서 합의된 통신운영은 충분히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군에 대한 음해성 발언이 난무해 일선 장병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한 여당 의원은 과거 정권을 들먹이며 군을 치욕스럽게 하는 언사를 여과 없이 내던지기도 했다. 청와대도 전체 작전 수행보다 북측과의 송신 여부를 과도하게 부각시켜 대통령과 군 사이에 엄청난 갈등과 불신이 있는 것처럼 비친 것은 매끄럽지 못한 처사였다. 청와대는 그로 인해 발생할 군의 사기 저하 문제를 고려했어야 했다. 성공한 작전이 매도당하는 상황에 이르렀으니 군으로선 믿고 의지할 곳이 없어진 딱한 처지가 된 것이다.

다행히 합동조사단의 조사는 북한의 침공에 대한 적절한 방어였다는 취지여서 이번 사태의 본질과 군의 사기에 대한 고려가 어느 정도 반영된 듯하지만 문제는 남는다. ‘해작사령관이 상급부대에서 사격을 중지시킬까봐 보고하지 않았다’는 대목에 대해 청와대측은 “작전예규상 경고사격은 2함대 사령관의 권한이고, 상부에서 사격중지 명령을 내리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해작사령관의 주장은 보고 누락의 중요 사유가 아니라고 봤다”며 더 이상 문제 삼을 게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기왕에 일선 장병들 사이에는 우리 군 지휘부가 남북화해협력을 중시하는 정치권의 기류에 지나치게 민감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없지 않았다.

남북관계의 정치적 진전과 관계없이 군은 확고한 도발 억지 태세를 갖춰야 한다. 우리 군이 강력해야 북한도 대화의 장에 나올 것이요, 그래야 남북 화해협력도 진전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군을 ‘음모적’으로 보는 일부 정치권의 시각은 단견에 불과하다.

▼군사작전은 군에게 맡겨야▼

군사작전은 군의 영역이며 군에 맡겨 줘야 한다. 요사이 지나치게 간섭하는 시어머니와 전문가로 자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는 군의 임무 수행에 혼란을 가져오고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켜 오히려 불신만 키운다. 정치권과 국민은 급할수록 여유를 갖고 우리 군을 믿고 느긋하게 기다리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육해공군도 국민 절대다수가 군에 대해 사랑과 신뢰를 보내고 있음을 굳게 믿고 사기충천한 가운데 전방을 완벽하게 지켜 주기를 기대한다.

이정린 전 국방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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