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28일 이틀에 걸쳐 입국한 468명의 탈북자들이 버스에 올라 임시 수용시설로 이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기자의 마음은 누구보다 착잡했다.
버스를 타고 가며 저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금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앞날에 대한 희망이 차례차례 무너져 곧 아픔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 그런 아픔을 수없이 넘어야 한다는 사실을 저들은 아는지…. 가방 2개를 달랑 들고 먼지가 뽀얀 11평 임대주택에 첫 짐을 푼 그 밤, 고향이 그리워 눈물로 베개를 적시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저들은 아는지….
2년 전 인천공항에 첫발을 내디뎠던 기자 역시 그랬다. 홍수로 범람한 두만강을 헤엄쳐 건너던 결행의 순간도 있었고, 공안에 체포돼 중국과 북한의 감옥을 6곳이나 옮겨 다니기도 했지만 한국에서의 첫날 밤만큼은 정말 잊혀지지 않는다. 화려한 불빛이 명멸하는 밤거리를 바라보며 새 삶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이 교차했던 그날 밤을.
그러나 두 달 뒤 8월의 땡볕으로 달아오른 컨테이너 속을 들락거리며 포도주 박스를 나르는 삯일꾼으로 정착의 첫발을 떼야 했다. 이어진 물품 배달, 카드 홍보, 옷 선별 작업…. ‘면접시 대학졸업증을 가져와야 한다’는 직원모집 광고를 보고 김일성대학 졸업증을 갖고 갔더니 “북한 실력이 통하겠어요”라며 쳐다보던 인사담당자의 눈빛도 잊을 수 없다.
아프리카의 미개인을 바라보는 듯한 ‘동포’들의 눈길 앞에서 스스로를 태연히 가다듬어야 했고, 밤이면 그리움 속에 뒹굴다가 아침이면 또 출근해 웃으며 지내야 했다. 가슴속에 어떤 아픔을 품었든, 어떤 청운의 꿈을 가지고 왔든 간에 ‘정착’이라는 듣기 좋은 말로 표현되는 생존의 문제가 무엇보다 절박했다. 탈북 인생의 출발점은 너나없이 꼭 같다고 생각한다.
한 달 동안 밤새껏 이야기해도 끝없이 새로운 얘기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과거는 소용없다. 그동안 기자는 탈북자 수용시설인 하나원을 나온 지 3일 만에 일을 시작하는 30대 탈북 여성도, 1년 반이 지나도록 직업 한 번 가져보지 않고 미국 이민을 꿈꾸는 탈북 남성도 보았다.
힘들게 번 돈으로 독거노인들을 찾아가 봉사하는 즐거움으로 하루하루를 감사해 하는 탈북자도, 승용차를 훔쳐 팔다 감옥에 간 탈북자도 보았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삶은 천차만별이다.
북한에서 온 많은 이들은 북한 영화 ‘열네번째 겨울’에 나오는 대사를 기억할 것이다.
“나와 그는 인생의 첫 시작은 같았건만 어찌하여 지금은 이리도 멀리 있는 것인가.”
꿈 없이 온 사람은 없다. 이제 시작은 같다. 쓰라린 아픔을 안고 사선(死線)을 넘어온 탈북 형제들이 이 땅에서 성실한 노력의 땀방울로 무사히 정착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주성하기자 zsh75@donga.com
▼주성하기자는▼
주성하 기자는 김일성종합대를 졸업하고 2000년 탈북해 2002년 한국에 왔으며 2003년 동아일보에 입사했습니다.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과 본인의 신변 안전을 위해 사진 대신 캐리커처를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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