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위원회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인종차별(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진상 규명을 위해 94년 출범시킨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차용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모델이 일제 36년에 이은 분단과 전쟁, 그리고 근대화와 민주화를 겪으면서 다층적 갈등구조를 형성해 온 우리 실정에 맞는지는 의문이다. 어떤 능소능대(能小能大)한 잣대가 있기에 무수히 굴곡진 우리의 근현대사를, 그것도 포괄적으로 재단하겠다는 것인가.
남아공은 ‘살아있는 역사’를 대상으로 관용과 화해를 추구했지만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이미 대부분 ‘역사’가 돼버린 과거사를 규명과 청산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남아공은 억압받던 80%의 흑인이 가해자였던 20%의 백인에게 용서의 손길을 내밂으로써 분열을 치유하고 사회적 통합을 이루고자 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과거사 청산을 외치는 집권 여당이 과연 편 가르기나 배제(排除)가 아닌 진정한 통합을 위해 과거사를 거론하고 있는가. 불행히도 그렇게 생각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20년 남짓한 민주화운동 경력만으로 길게는 한 세기에 가까운 역사를 임의로 재단하려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적지 않은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식의 과거사 청산은 성공하기 어렵다. 그 의도와 배경에 대해 의구심이 증폭되고 급기야는 “기득권층에 맞서 지지층의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서 과거사에 집착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면 오히려 분열과 갈등만 조장할 뿐이다. 역사가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동원된다면 그 또한 훗날 규명과 청산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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