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엘리트라고 여겼던 A는 자신이 국가와 사회에 책임이 있다고 느꼈다. 군부독재 시절 그는 운동권을 기웃거렸고 졸업 후 사회에 나와서도 개인의 영달보다는 세상의 정의에 관심이 많았다.
B는 달랐다. 그는 중간 수준 대학의 의예과에 들어가 의사가 되었다.
10년 후 두 사람은 다시 만났다. 둘 다 밥은 먹고 살았지만 A가 엑셀을 탈 때 B는 그랜저를 굴렸다. 다시 10년 후 A도 중견 사회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1주일에 50∼60시간 일하고 간신히 도시민 평균 월급 이상을 받는다. B는 1년의 4분의 1을 해외여행과 여가로 보내면서도 평생 다 쓰지 못할 만큼의 돈을 벌었다.
A는 한때 세상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공부도 잘했고 항상 더불어 살려고 했는데 왜 자신만 생각한 B보다 힘들게 사는가”가 불만의 이유였다.
세상의 이치를 짐작할 만큼 나이를 먹고서야 A는 그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슷한 조건이라면 돈은 구하는 사람에게 따라간다는 것을….
광복절을 앞두고 ‘과거사 규명’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들은 역사를 바로 세워야 사회가 발전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역사의 진실을 가려 후세의 거울이 되게 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나라가 어려울 때 누가 자신과 가족을 희생하며 나라를 위해 헌신할 것인가.
그러나 짚어봐야 할 것이 있다.
첫째, 과거의 잘잘못을 가리는 일이 미래의 번영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세계 경제사를 보면 안타깝게도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은 비례하지 않았다. 개인이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것과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것이 일치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국도 친일 및 독재 시비가 있는 박정희 정부 시절, 그리고 ‘광주학살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전두환 노태우 정부 시절에 경제적으로는 꽤 성장했다.
둘째, 개인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에너지는 무한하지 않다. 과거사 문제가 떠오르면서 한국 사회는 다시금 전면 대결 국면으로 치달을 조짐이다. 영광과 오욕이 교차했던 한국 현대사를 살피다 보면 서로 옳으니 그르니 하면서 끝없는 이전투구를 벌이게 될 것이다.
경제는 빈사상태를 헤매는데 ‘경제 먼저 챙기자’던 목소리는 공허하게만 들린다. 작금의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지도자를 비롯한 온 국민이 단합해 노력해도 모자란다. 사회가 온통 50년 전 일로 갈라져 싸우면, 앞으로 먹고 살 일은 누가 책임지나.
역사의 규명은 역사학자와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위정자들은 민생과 미래 대비에 전력투구하는 것이 옳다. 역사가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제대로 밝혀지기 위해서도 정치인들은 한발 비켜서야 한다.
신연수 경제부 차장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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