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브리핑에 '김일성 조문 촉구' 글 게재 파문

  • 입력 2004년 8월 2일 08시 46분


청와대 인터넷사이트(www.cwd.go.kr)에서 박근혜(朴槿惠) 한나라당 대표를 성적으로 비하하는 패러디 사진을 게재해 물의를 빚은데 이어 이번에는 국정홍보처 인터넷사이트(www.news.go.kr)에 김일성 주석 10주년 조문을 촉구하는 글이 올라 정부 인터넷사이트 운영과 관리에 구멍이 뚫린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국정홍보처 사이트 '김일성 조문' 글 논란=국정홍보처는 부처 홈페이지인 '국정브리핑'에 지난달 30일 '넷포터'(네티즌과 리포터의 합성어)의 게시판에 "우리 민족끼리 6·15 정신 되살리자"라는 글을 올렸다.

국정홍보처가 인터넷사이트에 글을 올릴 수 있도록 뽑은 4000명의 네티즌 가운데 한 사람인 인모씨가 올린 이 글은 "김일성 주석 10주년 조문단을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하루라도 빨리 꾸려 최소한의 도리를 해야 한다"며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예의와 염치를 존중했는데, 10년 전 '조문파동'을 거치면서 남북위기를 심화시킨 아픈 경험은 같은 민족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또 이 글에선 △'미 의회의 북한인권법 통과는 다른 나라에 대한 내정간섭이자 제국주의의 전형이므로 열린우리당의 '북한인권법 통과에 관한 결의안'에 발맞춰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북의 체제를 부정하고 일시적인 경제난관을 이유로 탈북한 사람을 남쪽에서 적극적으로 입국을 추진한다면 서로간 체제에 대한 인정을 명시한 6·15 공동선언 위반이 된다' △'정부는 우리사회 구석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냉전수구세력에 대한 대응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이어 이번에도 편집과정 거쳐=국정홍보처는 이 글에 대해 실무자(7급 상당)가 게시판에 올리기로 결정했고 기사를 심의하는 데스크(편집책임자)격인 심의위원은 이 글을 그날 올린 글 가운데 가장 좋다는 '오늘의 넷포터'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국정홍보처 인병택(印炳澤) 극정브리핑 팀장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실무자 판단에 따라 이 글을 채택했지만 국정홍보처나 정부의 공식입장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국정브리핑 사이트를 관리하는 자체 팀에서 이 글을 '좋은 글'로 채택했다는 점에서 '국정홍보처의 의견과 무관하다는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고된 실수'인가, 시스템 부재인가 논란=청와대와 국정홍보처의 잇따른 인터넷 파문은 단순한 실수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박근혜 패러디'나 '김일성 조문 촉구' 의견이 정부 공식 인터넷 사이트에 떠올랐고, 실무자가 좋은 내용이라고 편집까지 해서 올린 점에 비춰볼 때 여과장치도 갖추지 않은 '시스템 부재'라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선 청와대나 국정홍보처 등에서 지나치게 개혁코드를 강조하는 바람에 이 같은 무리수가 속출한다는 의견도 없지 않다.

다른 정부부처에선 별 문제가 없는데 권부의 핵심인 청와대와 정부를 홍보하는 국정홍보처에서 잇따라 사건이 터지는 것은 공직기강이 해이해진 탓이 아니냐는 것이다.

한편 한나라당 이정현(李貞鉉)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정부가 인터넷 리포터를 앞세워 김일성 조문을 정당화하고 북한 인권과 탈북자 보호를 거부하는 의사 표시를 한 것"이라며 "노 대통령은 '친북 반미' 견해가 담긴 글이 국정홍보 매체에 실린 경위와 그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국정브리핑 게재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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