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부처 공무원 60% 수도이전 반대 "기러기 아빠는 싫어요"

  • 입력 2004년 8월 5일 18시 22분


《“현재 과장이나 국장들은 그나마 자녀들이 대부분 중학생 이상이어서 수도 이전으로 자녀 교육 문제 걱정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맞벌이하는 사무관들은 자녀문제에 부인과 ‘생이별’할 생각까지 하니 벌써 갑갑해집니다.” 》

정부과천청사에 있는 재정경제부의 A사무관(36)은 요즘 초등학생인 아들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수도 이전’ 계획에 따라 과천청사가 충남으로 옮기는 2012년에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기 때문이다.

A사무관은 “아들이 한참 민감한 시기에 아버지가 집에 없으면 안 될 것 같지만 별다른 수가 없어 고민”이라고 털어놓았다.

부인이 중등학교 교사인 서울 정부중앙청사의 B과장도 나이 들어 ‘주말부부’ 노릇해야 할 일로 벌써부터 걱정이다.

B과장은 “후배 직원들 가운데도 맞벌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부인들의 걱정이 많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면서 “그래도 행정수도를 옮기려면 엄청난 예산이 들 텐데 실제 옮겨질지는 아직 더 두고 봐야 하는 것 아니냐”며 애써 위안했다.

최근 정부와 여당이 수도 이전을 강행하는 데 대해 정부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신분상 공개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지는 못하지만 적지 않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

수도가 충남지역으로 이전하면 비교적 싼값으로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고 쾌적한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하지만 ‘자녀교육’이나 ‘맞벌이부부’라는 더 큰 문제가 이들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다.

이 같은 공무원들의 고민은 최근 한 설문조사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시정연)이 지난달 5∼16일 서울 중앙청사 및 과천청사에 근무하는 중앙부처 공무원 2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 대상의 59.6%인 124명이 “수도 이전에 반대한다”고 대답했다. “찬성한다”는 대답은 30.8%인 64명이었다. 나머지 9.6%는 찬반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기를 꺼렸다. 시정연은 “이번 조사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숙명여대에 의뢰해 실시했다”고 밝혔다.

공무원들이 수도 이전을 반대하는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자녀 교육’ 문제였다.

이 조사에서 “이전에 반대한다”고 밝힌 공무원들의 50%가 ‘자녀교육 문제’(50%)를 반대 이유로 들었다. 또 ‘맞벌이 등 가족원 직장 문제’(43%)도 적지 않은 걸림돌로 꼽혔다.

청사가 ‘신행정수도’로 옮겨지면 서울과 충남을 오가야 하는 이른바 ‘기러기 아빠’가 크게 늘어나는 등 공무원들 가족생활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설문 대상 공무원들 가운데 신행정수도로 “가족 모두 이주하겠다”는 대답은 34.6%에 그쳤다. 나머지 65.4%는 “혼자 또는 가족 중 일부만 함께 이주하겠다”고 밝혔다.

김광현기자 kkh@donga.com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송진흡기자 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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