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고구려 빼앗기’]<3>중국사 확장 전략

  • 입력 2004년 8월 8일 18시 37분


중국은 국경선이 긴 나라다. 그만큼 접경 국가와 영토분쟁이 잦다. 중국이 끊임없이 인접 국가나 자국 내 소수민족의 역사를 자국 역사에 편입하려고 획책하는 것은 이런 영토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중국 역사해석의 기본 입장은 ‘현재 중국 영토 안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의 역사는 모두 중국의 역사’라는 현재 중심의 논리다. 여기에는 55개나 되는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이 한족(漢族)의 역사만 중국사라고 고집할 경우 국가 분열에 직면할 수 있다는 불안이 숨어 있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지금 내가 장악한 땅은 모두 내 것’이라는 제국주의적 영토관과 다를 바 없다. 이는 과거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상실한 영토를 회복하려는 중국 자신의 논리와도 정면으로 부딪친다. 중국은 홍콩 마카오를 되찾고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열도)를 두고 일본과 영토분쟁을 벌이면서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중국 영토이며 서구 열강과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으로 빼앗긴 것이라고 국제 사회에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자국 내 소수민족 역사, 모두 중국사라고 억지=중국 내에서 현재 가장 심각하게 소수민족의 봉기나 영토분쟁이 계속되는 지역은 티베트와 신장위구르. 이 중 티베트는 마오쩌둥(毛澤東) 통치기인 1950년 무력침공으로 중국의 영토가 됐다.

티베트가 중국에 장악된 것은 몽골족이 중국 대륙을 장악한 원(元)나라 때였다. 그러나 이때 원과 티베트는 티베트어로 ‘최왼(檀越·단월)’이라는 독특한 정치 종교적 관계를 맺었다. 즉 원은 티베트 영토를 티베트 불교 최고 고승(高僧)에게 공시(供施·우리말로 보시)하는 대신 티베트 승려들은 원 제국의 정신적 기초를 제공한다는 ‘호혜평등’의 계약이었다. 이런 관계는 명(明) 청(淸)대까지 지속됐다. 그러나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이 무너지고 중화민국이 세워지자 티베트는 독립을 선언한다.

1950년 무력침공 때 중국은 최왼 관계가 호혜적 관계가 아니라 티베트가 중국의 속국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자신들의 티베트 병합을 합리화했다. 이에 대해 서강대 김한규 교수(사학)는 “티베트 민족과 한족(漢族)은 원대나 청대에 모두 몽골족이나 만주족이 세운 제국의 피지배자였을 뿐”이라며 “이를 근거로 동일한 중화민족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중국의 논리를 비판했다.

신장위구르가 중국의 직접 통치 아래 들어간 것은 청나라 때였다. 그 전까지 이 지역은 이슬람 문명의 영향을 받으며 여러 형태의 나라로 존재해 왔다. 독자성이 강했기 때문에 청이 무너진 뒤 여러 세력으로 나뉘었으나 통합세력을 이루지 못하다가 결국 중화인민공화국에 다시 복속됐다. 중국은 이 지역을 오로지 청나라 때의 점거만을 역사적 근거로 내세워 자국 영토로 삼은 것이다.

▽영토 회복 때는 제국주의 비난하며 여론 몰이=중국은 이처럼 자신들의 영토를 확장할 때는 과거 팽창정책을 펼칠 때의 역사를 근거로 끌어대지만 반대로 자신들이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으려 할 때는 서구 열강과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주의를 비판하는 이중전략을 구사한다. 홍콩과 마카오 반환과정에서 이런 이중성은 뚜렷이 드러났다.

마카오는 1553년 포르투갈에 의해 점령당한 뒤 1999년 중국이 돌려받기까지 446년간 포르투갈에 지배당했다. 1845년에는 포르투갈에 영구 할양이 결정되기도 했다. 홍콩도 1842년 난징(南京)조약으로 영국에 영구 할양됐던 땅이었다. 한시적으로 할양된 곳은 홍콩 본섬 전체가 아니라 1860년 베이징(北京)조약 등으로 추가 할양된 주룽(九龍)반도 등 신제(新界)지역이었다.

중국은 마카오와 홍콩을 돌려받기 위해 국제 사회에서 포르투갈 및 영국과 맺은 조약의 불평등성을 강조하면서 이들 지역의 할양은 서구제국주의 침략의 결과물이란 여론몰이를 꾸준히 펼쳤다. 그 결과 1972년 유엔 비(非)식민지화 특별위원회에서 홍콩과 마카오를 돌려받을 근거를 마련했으며 원래 영구 할양됐던 지역을 포함해 홍콩 전체를 완전히 돌려받았다.

이런 전략은 현재 일본과 영유권 분쟁 중인 댜오위다오에도 적용된다. 중국은 이 섬이 1894년 청일전쟁 이후 일본제국주의 세력이 무단 점거한 것이기 때문에 ‘1945년 이전의 일본 점령은 무효화돼야 한다’는 카이로선언과 포츠담선언에 의거해서 중국 영토로 반환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1909년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상태에서 간도(間島)지역을 자국에 넘겨준 간도협약에 대해서는 카이로선언과 포츠담선언의 정신을 외면하고 있다.

포항공대 박선영 교수(중국사)는 “고구려사의 귀속문제는 결국 국제 사회로부터 얼마나 지지를 끌어내느냐에 달렸다”면서 “중국측 주장을 반박할 때 시야를 고구려사에만 국한시키지 말고 중국이 현재 영토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다른 지역까지 총체적으로 조망해 중국의 이중적 태도를 고발하고 그 모순을 공략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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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고구려사가 중국사라면 광개토왕은 중국인인가”▼

“(중국과) 전쟁이 난다고 하더라도 역사 없는 국민으로 사는 것보다 낫다.”

“고구려사가 중국사라면, 광개토대왕도 ‘되놈’이란 말인가.”

외교통상부 홈페이지(www.mofat.go.kr)에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와 관련해 중국을 비난하고, 정부의 부실한 ‘예방외교력’을 질타하는 네티즌들의 글이 쇄도하고 있다. 평소 하루 평균 10건 안팎에 불과하던 네티즌 의견이 7, 8일 이틀 동안에만 약 250건으로 폭증했다.

필명 ‘심희수’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때문에) 우리나라가 없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착잡했다”며 “북핵과 연관지어 고구려사에 대해 (중국에) 한마디도 못하는 건 소인배나 하는 짓”이라고 중국과 우리 정부를 함께 비난했다. ‘김성환’도 “중국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염치도 잠시 접어두는 민족”이라며 “도둑놈(중국)에겐 그에 걸맞게 대우해야 한다”며 정부의 강경 대응을 주문했다.

일부 네티즌은 ‘기발한’ 대응책도 제시했다.

‘강태우’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우리는 ‘중국공정’을 시작하자”며 “중국이 ‘역사 왜곡’이라고 항의하면 ‘정치와 무관한 학술적 문제’라고 맞대응하자”고 말했다. ‘박종엽’은 “아테네 올림픽 입장 때 한반도 깃발 윗부분에 점선으로 만주 대륙을 그려놓고, ‘KOREA’ 표기도 ‘KOGOOREA’(고구려)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광개토’는 “북한과 함께 2008년 베이징(北京) 올림픽에 불참하자”고 말했다. 이 외에도 “광개토대왕 얼굴이 실린 10만원권을 만들자” “‘맞불작전’ 차원에서 티베트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한국으로 초청하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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