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철부지 좌경세력처럼 대한민국의 법통과 정통성을 부인할 생각이 아니라면, 그리고 건국 60주년이 되는 2008년에 대한민국을 뒤엎고 ‘새 나라’를 세운다는 시중의 소문이 근거 없는 일이라면, 상하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인정하고, 우리 헌법의 근본이념과 기본원리를 충실히 존중하고 실현하겠다는 분명한 말 한마디면 끝날 일이다. 국민이 듣고 싶은 이 말은 하지 않은 채, 친일파 청산과 유신 청산 같은 엉뚱한 과거청산 문제를 제기하는 대통령의 날 세운 모습이 한심하고 답답하다.
▼편향된 정책이 의혹의 발단▼
노 대통령 취임 이후 날이 갈수록 우리의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및 시장경제질서가 흔들린다고 느끼는 국민이 늘고 있다. 따라서 국가의 정체성에 대한 야당의 의문 제기를 뜬금없는 과거청산 문제로 피해갈 일은 결코 아니다. 대한민국의 법통과 정통성을 부인하고 오히려 북한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하려는 좌경세력이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 요소요소에 자리 잡고 정부 여당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믿는 국민이 적지 않다는 데에 문제의 본질이 있다. 이들이 느끼는 좌경화의 의혹을 해소하는 분명한 입장 표명과 상응한 정책만이 정체성 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
대북정책만 해도 그렇다. 북한의 핵 문제와 서해사태 및 한미관계에서 보듯 햇볕정책 이후 우리 안보상황은 최악으로 취약해졌다.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북한과의 화해협력정책은 반드시 필요하고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화해를 위해서 우리의 소중한 근본가치까지 희생할 수는 없다. 지킬 것은 지키고 따질 것은 따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남북교류가 일시적으로 중단되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경협사업의 속도조절도 필요하다.
북한 정권과 일부 좌경세력이 강조하는 ‘민족 공조’는 결코 지상과제일 수 없다. 북한과의 교류 협력은 북한의 지배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북한 민중의 이익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우리 헌법이 천명하는 ‘우리들과 우리들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하는’ 바람직한, 정체성 있는 대북통일정책이 바로 그것이다. 화해를 내세워 북한의 인권문제 논의를 금기시하면서 유엔의 북한 인권결의안을 외면하고 미국 의회의 북한 인권법 제정에 엉뚱한 시비를 거는 반인권적인 자세는 우리 헌법이 추구하는 인간 존엄성의 근본가치를 실현하는 정체성에 맞는 대북정책은 아니다.
북한의 간첩까지도 민주인사로 평가하는 대통령소속 국가기관을 둔 정부에서 북한 주민의 비참한 인권상황을 보고 침묵하는 것은 인간 존엄성을 존중하는 자유민주정부의 정체성 있는 태도는 아니다. 북한의 간첩과 빨치산이 우리의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의문사위의 논리대로라면, 북한의 독재정권에 항거해 목숨을 걸고 탈출, 북한의 비참한 인권상황을 전 세계에 알리면서 중국과 동남아에서 방황하며 자유 대한민국을 그리워하는 수많은 탈북 주민들도 우리의 민주화에 기여한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그들을 보호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인권을 존중하는 자유민주정부의 당연한 책무다.
▼논란 끝내고 경제재건 전력해야▼
몇백 명의 탈북 주민을 받아들인 것 때문에 북한 정권에 저자세가 돼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독일 분단 상황에서 동독에 대한 서독의 경제 지원은 철저하게 동독 주민의 인권 개선과 연계시켜 시행됐고, 그것이 독일 통일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사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노 대통령은 하루속히 자신의 분명한 입장을 밝혀 정체성 의혹을 해소하고 날로 어려워지는 경제의 재건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먹고사는 문제로 많은 국민을 힘들게 하는 정부는 더 이상 존재가치가 없다.
허영 명지대 초빙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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