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확대냐 減稅냐]부작용 없는 경기부양책은 없다

  • 입력 2004년 8월 10일 18시 51분


《‘재정확대인가, 아니면 세금 감면인가.’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정치권이 경기부양 수단을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정부 지출을 확대하는 것이 경기를 살리는 데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정부도 대체로 이 같은 입장에 동의하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은 세금을 깎아줘 개인의 가처분소득을 늘려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 같은 정책을 썼던 해외의 사례와 국내에서의 적용 가능성을 알아본다.》

▼열린우리당 재정확대 정책▼

▽외국의 경향=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지출을 확대한 대표적인 사례는 1930년대 세계 대공황 극복을 위해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정부가 도입한 ‘뉴딜정책’이다. 정부가 테네시강 유역 개발공사(TVA) 등 대규모 토목공사 등을 일으켜 경제 발전과 실업자 구제에 직접 나선 것이다. 수백만 실업자를 구제하고 침체에 빠진 미국 경기를 회복시켜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 부양책의 대표적인 모델로 꼽힌다.

이어 1990년대 일본이 침체된 경기를 부양시키기 위해 1990년대 대규모 재정 지출 확대 정책을 추진했다. 건설 부문 등에 자금을 투입해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을 썼지만 일시적인 경기 회복에 그쳤고 만성적인 재정적자로 장기 침체의 원인이 됐다는 지적도 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유럽 미국 등 선진국들은 재정지출 확대보다 감세를 통한 경기 부양책에 주력하고 있다.

한국조세연구원 박형수 박사는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사회보장 관련 예산, 국방비 등 예산이 늘어나면서 재정 지출의 여력이 줄어든 데다 1990년대 후반 경기 호황에 따라 조세 수입이 늘어나면서 감세 정책으로 선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적용 문제점=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 부양책은 정부가 돈을 풀어 단기간에 유효 수요를 직접 증대시킬 수 있다는 점이 일부 긍정적인 측면도 있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그 ‘효과’에 비해 ‘비용’이 너무 크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여당은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7조원 안팎의 국채를 발행한다는 계획이지만, 지금도 공적자금 원리금 상환 등 갚아야 할 나라 빚이 많은 상황에서 국가 재정에 더욱 큰 부담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더욱이 현 정부 들어 재정지출 중에서 사회복지 예산 등이 증가한 점을 들어 재정지출이 실질적으로 생산이나 투자 효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이래서 지지한다=LG경제연구원은 감세정책은 중장기적으로는 효과가 있겠지만 단기적으로는 재정지출 확대가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LG경제연구원의 송태정(宋泰政) 연구위원은 “현재의 소비침체 장기화는 중산층은 주택담보대출, 저소득층은 만성적인 적자 재무구조 등 구조적 원인에 의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근로소득자의 40% 이상이 세금을 내지 않는 상황에서 세금을 깎아주면 주로 고소득층에 혜택이 돌아가지만 고소득층의 소비는 소득이 늘어도 크게 증가하지 않으며 소득 양극화만 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세금은 한번 내리면 올리기 어려워 중장기적으로 국가의 재정수지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지적했다.

송 연구위원은 “재정 지출을 사회간접자본(SOC) 확충 등에 집중하면 내수기반 확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한나라당 세금감면 정책▼

▽외국의 경향=경기부양을 위해 감세(減稅)정책을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는 1980년대 미국.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레이거노믹스’를 주창하면서 당시로선 파격적인 대규모 감세정책을 실시했다. 세금을 깎아줄 경우 초기에는 세수(稅收)가 줄어들 수 있지만 소비가 크게 늘어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이에 따른 세수도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평가는 엇갈린다. 비판론자들은 당시 대규모 감세정책 실시로 재정적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결국 세금을 올려야 했던 점을 거론한다. 재정적자가 급증한 데에는 ‘강한 미국’을 지향하면서 국방비 지출을 크게 늘린 것도 영향을 미쳤다.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레이건 대통령 재임기간 중에는 재정적자가 크게 늘어났지만 감세정책으로 미국 경제가 활력을 되찾으면서 1990년대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장기호황의 밑거름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1년 경기후퇴에 대응하기 위해 2001년부터 2011년까지 1조3500억달러의 세금을 깎아주는 대규모 감세정책을 단행했다.

▽한국적용 문제점=감세정책이 국내 경기를 부양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서는 찬반 의견이 엇갈리지만 그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는 견해가 더 많다.

실제로 정부가 감세효과를 분석한 결과 소득세를 1% 내릴 때 세수가 1조원 줄지만 1인당 돌아가는 혜택은 연간 1만∼2만원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연구원 이수희(李壽熙) 기업연구센터 소장은 “근로자와 개인사업자 중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이 절반에 가까운 상황에서 감세정책의 경기부양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정부와 여당이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일관된 리더십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래서 지지한다=삼성경제연구소는 감세정책이 소비와 투자심리 회복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감세론’을 지지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내놓은 ‘SERI 포커스’ 보고서에서 “내수침체의 주요 원인은 총소득에서 조세와 공적부담을 뺀 사용가능소득이 감소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감세와 국민 부담금의 축소가 근로자들의 경제심리 회복과 소비 여력 증대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중산층 이상의 소비심리 회복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

반면 이 연구소는 지난해 1, 2차 추가경정예산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대 효과가 크지 않았다고 분석하면서 재정지출 확대가 경기회복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정부가 올해 하반기에 4조5000억원의 재정지출을 확대하기로 했지만 주로 복지예산 등에 집중돼 별 효과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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