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齊)나라 경공(景公)이 정치가 무엇이냐고 물은 데 대한 공자(孔子)의 간명한 대답이다.
군주는 군주다우며 신하는 신하답고 아비는 아비다우며 자식은 자식답게 구실을 다하는 것이 정치라는 뜻이다. 얼른 듣기엔 싱겁기 이를 데 없는 동어 반복 같지만 이즈음 새삼 그 뜻을 되씹어보게 되는 명언이다.
▼대통령이 밝힌 ‘일나누기’▼
아비가 아비답지 않고 자식이 자식답지 않은 세상, 선비가 선비답지 않고 군인이 군인답지 않은 세상, 게다가 여당이 여당답지 않고 심지어 대통령이 대통령답지 않은 세상이라면 그것은 ‘정치’가 아니라 난장판이다. 그런 판국에선 제나라의 경공이 아니더라도 “비록 곡식이 있으나 내가 먹을 수 있겠는가”라고 탄식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정치의 싸움판에 묻혀 곳간에 곡식이 줄어드는지조차 모르는 세상이라면….
여름휴가에서 돌아온 노무현 대통령이 국무총리와의 역할분담론을 들고 나왔다. 앞으로 일상적 국정운영은 총리가 총괄하고 대통령은 장기적 국가전략과제와 주요 혁신과제를 추진하는 데에 집중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책임제 아래에서 총리가 분담할 역할이 무엇이며 얼마나 그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도 없진 않으나 조금은 신선한 발상이다. 대통령의 의지가 굳고 총리가 이해찬씨처럼 경륜과 정치력을 갖추고 있다면 이런 기회를 국정운영의 전기로 삼지 말란 법도 없을 것이다.
역할분담을 통해 노 대통령에게 무엇보다 바라고 싶은 것은 이제 일상적인 정쟁에서 벗어나 대통령다운 대통령, 치열한 대선의 승자가 아니라 모든 국민을 보듬는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해 국가를 대표’하는(헌법 제66조), 대통령다운 대통령이 되는 일에 진력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를 위해 모처럼 좋은 화두가 나온 김에 다른 두 분야에서도 역할분담론을 제의해 보고자 한다. 첫째는 정부와 학계의 역할 분담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한국 근현대사의 재평가 작업’은 필요하고 적실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정부나 여당이 맡을 일은 아니다. 그건 학계에서 해야 할 역할이다. 도대체 과거사란 그 사실 여부를 객관적이고도 중립적으로 천착해야 할 학문적 탐구의 대상이지 정치판에서 편을 갈라 그때그때의 정파적 이해에 따라 선악의 의미부여를 할 대상은 아니다.
과거사의 탐색은 학계가 하고 정부는 그를 엄정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만 하면 된다. 나는 김영삼 정부 시절 어렵사리 정부를 설득해서 현대사연구소의 설립에 일조를 한 일이 있으나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그 연구소를 해체해 버렸다. 이제 노무현 정부에서 여당이 과거사의 포괄적 규명을 위해 ‘진실과 화해 미래위원회’를 당내에 두겠다고 나서고 있다. 그러나 그건 아무리 이름이 좋아도 ‘진실과 화해와 미래’에 도움은 되지 않을 것이다. 그건 정당이나 당인(黨人)이 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는 정부와 언론의 역할 분담이다. 민주주의 국가의 장점은 정부에 대한 비판적 언론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정부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언론의 존재 여부가 민주체제와 독재체제를 분간하는 시금석인 것이다. 스탈린의 옛 소련, 히틀러의 나치 독일, 김씨 부자의 북한이 다같이 갖지 못하고, 갖지 않으려 한 것이 바로 이러한 비판적 언론이다. 비판 언론은 없고 어용언론의 찬양만 있는 체제는 하나같이 멸망했거나 멸망하려 하고 있는데도 비판 언론이 활성화된 체제는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는 것은 무얼 의미하는가.
▼학계-언론관계도 살펴보길▼
세습을 통해서가 아니라 선거를 통해서 권력을 장악하고 유지하는 민주 국가의 정부는 홍보 기능이 필요하다. 그렇대서 청와대의 홍보가 야당의 당수를 성희롱 패러디를 통해 몰아붙이고 공영방송은 정부의 나팔을 부는 일에 자족한다면 딱하다. 청와대의 홍보는 청와대다워야 하고 공영방송은 언론다워야 한다. 홍보와 언론의 역할 분담이 필요한 것이다.
최정호 객원大記者·울산대 석좌교수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