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열린우리당이 빚을 내서라도 재정지출을 늘리기로 한 데 이어 한국은행은 물가 불안을 무릅쓰고 콜금리를 전격 인하했다. 부동산정책의 기조도 ‘투기 억제’에서 ‘투자 및 거래 활성화’로 바뀌고 있다.
단기부양책을 절대 쓰지 않겠다던 정부 여당의 방침이 바뀐 셈이다. 노무현(盧武鉉) 정부가 결국 어려운 경제 현실을 인정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경제전문가들은 현 상황에서 단기부양책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으며 경기부양 효과도 어느 정도 거둘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재정건전성 악화나 물가상승, 부동산투기 재연 등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특히 시장경제에 대한 확고한 원칙을 지켜 투자자들의 불안심리를 해소하는 노력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정부 여당에 이어 한은까지 경기 살리기에 ‘올인’=한은이 시장의 예상을 뒤집고 콜금리 인하라는 ‘깜짝 처방’을 내놓은 것은 그만큼 국내 경제상황이 어려워지고 있음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날 한은 박승(朴昇) 총재는 “지금은 국가경제를 위해 물가보다 경기 회복에 더 신경 써야 할 때”라며 경기부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물가안정이 최우선 목표인 한은 총수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발언이다.
박 총재는 “수출 증가율이 떨어지고 건설경기가 나빠지고 있는 데다 고(高)유가까지 겹쳤다”며 “이대로 두면 (어려운 상황이) 내년까지 갈 수 있다”며 금리인하 배경이 내수경기 회복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경기부양으로 돌아섰다=경기부양을 위해 재정과 통화정책에 이어 감세정책까지 동원되고 있다. 정부는 소득세와 법인세에 대한 일률적인 감세조치는 고려하지 않고 있지만 임시투자세액공제 제도 등 선별적인 조세 감면 조치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특히 정부는 부동산정책 기획단을 재정경제부 산하에 두어 부동산 관련 정책을 총괄하도록 했다. 이로써 부동산정책의 ‘지휘봉’이 진보성향의 이정우(李廷雨)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에게서 시장론자인 이헌재(李憲宰)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에게 넘어감에 따라 부동산정책의 기조도 시장친화적인 방향으로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단기부양책을 쓰지 않겠다고 강조해 왔지만 시장의 요구를 외면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 정책기획위원장은 6월 말 한 간담회에서 “‘참여정부’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발전을 생각하는 ‘장기주의’를 택하고 있다”며 “단기부양책은 없는 만큼 이해하고 행동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정부 여당이 경제정책 기조를 부양정책으로 바꾼 것은 현재의 경기에 대한 인식 변화와 함께 ‘근거가 약한 경제 낙관론으로 민심이 떠나고 있다’는 열린우리당의 위기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단기부양정책 부작용도 많다=대부분의 경제전문가들은 단기부양정책의 효과는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간 경제연구소 임원은 “금리인하는 부동산 가격을 상승시키고 경기부양효과는 적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2일 열린우리당과의 경제정책간담회에서 “물가 부담이 따르는 대규모 부양정책은 정당화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재정지출 규모가 최소화돼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김용하(金龍夏) 순천향대 교수는 “재정지출 확대 등 단기 처방으로 경제를 살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투자를 살리고 경제주체들의 신뢰를 되찾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이강운기자 kwoon90@donga.com
차지완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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