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발레리 데니소프/숙제 많은 한-러정상회담

  • 입력 2004년 8월 18일 18시 52분


노무현 대통령이 9월 러시아를 처음 방문한다. 노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국제정상회의에서 만난 적이 있지만 상대국을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양국 국민이 거는 기대는 크다.

우선 한반도 문제가 어떻게 다뤄질지가 관심사다.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서 한국과 러시아의 태도는 거의 일치한다. 푸틴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북한의 핵무기 보유 반대를 분명히 선언한 바 있다. 실제 러시아는 ‘포괄적 타결 방안’을 주장해 왔다. 이번 회담에서도 푸틴 대통령은 ‘동결 대(對) 보상’ 방식으로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동결은 한반도의 ‘완전하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의 첫걸음을 의미한다.

한-러간 경제 협력도 중요한 의제다. 양국간 무역량이 늘어나고 있지만 만족할 만한 수준은 못 된다. 2003년 양국간 교역량은 42억달러였지만 한국과 중국의 교역량은 570억달러였다. 한-러 정상은 경제협력 강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지난해 한국이 러시아에 6만대의 자동차를 판 것이나 현재 추진 중인 1억5000만달러 규모의 자동차 공동생산 계획이 그 좋은 예다.

투자 협력도 부진하다. 중국에 대한 투자에 비해 더욱 그렇다. 한국 기업은 여전히 러시아에 대한 투자를 꺼리고 있는 것 같다. 예컨대 이르쿠츠크 가스전 사업이나 나홋카 자유무역지대 건설 사업 등은 몇 년째 답보 상태다. ‘정치적 의지’가 있으면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양국은 먼저 큰 노력과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 문제부터 신속하게 해결하며 협력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 합의된 것만이라도 이행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선이다. 다음으로 양국 정부간 각종 경제 관련 공동위원회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한국과 북한 러시아의 3각 경제협력 가능성도 논의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철도 연결이다. 한반도 종단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연결은 30억달러 정도의 투자가 필요한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 프로젝트가 실현되면 동북아에서 서유럽까지 매년 100만t 이상의 물량을 운송할 수 있다. 북한 산업의 현대화 문제를 한국과 러시아가 함께 추진하는 것도 구상해 볼 수 있다.

과학기술 분야는 상대적으로 협력이 잘 이뤄져 왔다. 시베리아의 노보시비르스크에는 한-러 과학기술센터가 있고 양국 과학자들이 레이저와 바이오테크닉 우주기술 등 50개 이상의 분야에서 공동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것을 산업과 지적재산권에 대한 협정 등으로 법적 뒷받침을 해 줘야 한다.

한-러 관계를 되돌아보면 막연히 상대에 대한 환상을 가졌던 ‘낭만적인 시기’가 있었고 서로에 대해 실망했던 적도 있었다. 이제는 이런 시기를 극복하고 성숙하고 실용적인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노 대통령의 방러가 그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발레리 데니소프 러시아 모스크바국제관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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