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교수는 다음주 발간될 계간지 ‘당대비평’ 27호에 실은 글 ‘개혁과 한국정치:현대사, 담론 그리고 보편주의의 문제’에서 노무현 정부의 개혁에 대해 “집권 종료 이후 어떤 모습의 국가와 사회를 물려줄 것인지에 대한 비전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노무현 정부 개혁의 가장 큰 특징으로 ‘보편적 기준의 붕괴와 이중 잣대의 만연’을 꼽았다. 현 정부의 개혁을 이끄는 세력이 과거에 보인 태도와 집권 이후 보이는 태도에 이중적 모습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우선 집권세력의 대북관에 대해 “(남한의) 어떤 인권투쟁에 대한 외국의 지원은 필요하지만 (북한의) 어떤 인권투쟁에 대한 외부 지원노력은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남한 독재정권에 대한 경제원조는 독재정권을 강화하니 중단해야 하지만, 북한 독재정권에 대한 경제원조는 독재임에도 (인민을 먹여 살려야 하니) 지속돼야 한다는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 이 같은 이분법과 뒤바뀐 흑백논리로는 보편적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개혁을 한다고 말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결국 특정의 보편적 원칙과 가치를 위한 개혁이 아니라, 어떤 대상과 주체를 인정하느냐 부인하느냐, 옹호하느냐 증오하느냐의 문제에 빠져 있다”며 “(지금) 우리의 개혁논리와 이론이 추구하고자 했던 보편주의가, 현실상황을 강조한 박정희의 독재논리와 너무나도 똑같아졌음을 발견할 때 놀라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으로 개혁의 ‘불균등성’을 지적했다.
노무현 정부가 개혁하려는 분야에 각각 보수적 개혁, 자유주의적 개혁, 급진적 개혁이 혼재돼 있다는 것. 박 교수는 “문제는 이들 사이의 편차가 너무 크고 상호 조율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마지막으로 박 교수는 ‘개혁의 자기물신화’ 경향도 보인다고 지적했다.
개혁이라는 말을 선점함으로써 이미 자신은 개혁적, 진보적이라는 환상을 갖게 되며 어떤 반개혁적 선택을 하더라도 자신의 행동은 개혁적이라고 믿으려 한다는 것. 박 교수는 “행동의 결과에 관계없이 말로만 개혁을 언급하는 단계가 되면 끝내 개혁 실패의 책임을 자기가 아닌 남에게서 찾게 된다”고 경고했다. 노무현 정부의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개혁세력 내부를 분화할 것이 아니라 정부-정당-기업-언론-지식인-문화 및 시민단체 사이의 광범한 횡적 연대를 통해 자유주의적 온건 개혁연합을 형성해야 한다고 박 교수는 조언했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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