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씨의 글은 일제강점기의 유명 대중잡지 중 하나였던 ‘삼천리(三千里)’에 실렸다.
이 잡지 1941년 1월호에는 ‘지원병의 일기’라는 4편의 글이 실렸는데 이 중 ‘소학교훈도(小學校訓導)의 직(職)을 버리고’란 글이 바로 신씨가 일본명인 시게미쓰 구니오(重光國雄)라는 이름으로 게재한 것이다.
신씨는 이 글에서 “전라남도 화순 청풍소학교에서 선생 노릇을 하다가 지난 팔월에 영광스러운 입소가 허가되었다”면서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과 같이 일본남자인 우리들이 폐하의 군인이 되는 것은 의례히 할 일이다”라고 썼다. 신씨는 또 “(지원이) 당연한 것을 칭찬하는 것을 보면 지원병이 늦게 된 것을 꾸지람하는 이가 없는 것이 섭섭하다”면서 “이는 반도동포의 부끄러운 일”이라고 적었다.
신씨는 글 뒷부분에서 지원 입대를 노골적으로 종용했다.
“참으로 황국신민이 될 생각이 있거든, 내선일체를 실행하려고 생각하거든 이 훈련소로 오시오. 부잣집 자제가 맨 처음 들어오시오.…(중략)…나의 이 감격을 한 가지로 나누지 않으시렵니까. 이렇게 좋은 기회를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삼천리는 1929년 6월에 창간된 대중잡지로 발간 초기엔 민족지적인 성격을 보이기도 했으나 일제의 가혹한 검열 속에 점차 현실과 타협하며 노골적인 친일지로 전락했다.
정양환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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