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여권의 중추세력인 일부 386세대 정치인들은 대한민국을 건국하는 과정에서 친일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과거사 문제가 미래로 나아가는 것을 제약하고 있다는 현실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1948년 10월 출범했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이승만(李承晩) 전 대통령의 권한약화 시도와 특위 피습사건 등 우여곡절 끝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49년 8월 해체된 것에 아쉬움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노 대통령이 최근 의문사위를 방문해 “반민특위 해체 이래로 잘못된 역사의 규명이 되지 않고 지연되고 있다. 누군가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 같은 인식을 드러낸 사례다.
이에 앞서 노 대통령은 2001년 11월 “해방이 되었을 때 소련을 등에 업은 분열세력과 미국을 등에 업은 분열세력이 각기 득세했다”고 말한 바 있다.
여권은 이 같은 시각에 입각해 그동안 과거사 진상조사의 걸림돌로 ‘친일-독재-기득권세력’을 지목했고, 이를 우리 사회 주류교체의 당위적 논리로 내세우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열린우리당의 386 의원은 “우리사회 내부에 일제강점기부터 면면히 내려온 기득권층이 존재하고 있고 이들이 지배세력으로 남아 변화에 저항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대사에 대한 이 같은 시각은 굴곡의 시대를 살아온 ‘산업화 세력’의 공(功)에 대한 평가를 도외시하고 있다. 더욱이 광복 직후 냉전구도가 고착화돼 가고 있던 당시 국제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현재의 정치적 잣대로 판단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서강대 신지호(申志鎬) 교수는 “건국 직후 반민특위에서 친일파 청산이 이뤄지지 못한 것은 물론 잘못된 역사”라면서도 “그러나 광복 후 60년이 다 된 지금 정치권에서 진행되는 방식의 과거 청산은 오래 가지도 못하고, 시기적으로도 타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한 386의원은 “과거사 문제를 놓고 싸우는 386세대들이 과거 80년대의 투쟁의식에서 한 걸음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며 “현재 대부분의 386세대는 오히려 투쟁의 논리를 뛰어넘는, 미래를 위한 담론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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