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前 日에 약탈된 ‘북관대첩비’ 반환 무산되나

  • 입력 2004년 8월 22일 18시 22분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있는 북관대첩비. 야스쿠니 신사는 몇년 전 이 비를 경내 숲속으로 옮겼고 지금은 아예 일반인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있는 북관대첩비. 야스쿠니 신사는 몇년 전 이 비를 경내 숲속으로 옮겼고 지금은 아예 일반인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100년 만에 돌아올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가 한국 외교당국의 무성의로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靖國)신사에 계속 볼모 신세로 남게 됐다.

임진왜란 때 조선 의병의 승전을 기념해 함북 길주에 세워졌던 북관대첩비는 1905년 일본군에 약탈당한 뒤 지금껏 야스쿠니에 방치돼 왔다. 특히 한일의 노스님들이 이를 반환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왔으나 이들의 마지막 염원도 물거품이 될 운명이다.

일본에서 반환운동을 펼쳐온 일한불교복지협회의 가키누마 센신(枾沼洗心·74) 스님과 한국측 파트너인 한일불교복지협회 초산(樵山·75) 스님은 지난달 13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일본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열어 고이즈미 총리의 방한 때 한국 외교당국에서 북관대첩비의 반환을 요청해달라고 촉구했다. 두 스님은 이날 ‘남북한 간 조정이 이뤄지고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정식 반환을 촉구하면 돌려줄 용의가 있다’는 야스쿠니 궁사의 서약서를 공개하며 “북한에서 이를 받겠다는 의사를 밝힌 만큼 한국 정부의 요청만 있으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교통상부는 이튿날 보도자료를 통해 “1979년 정식 반환을 요청한 이래 한일 외교채널을 통해 계속 반환 요구를 해왔으나 일본 정부는 민간 보유물이라 관여하기 곤란하다고 하고 야스쿠니측은 일본 정부의 공식 요청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입장을 반복해오고 있다”고만 밝혔다.

게다가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제주에서 열린 고이즈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양국간 과거사 문제에 대해 내 임기 중엔 문제 제기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북관대첩비에 대한 언급은커녕 반환운동을 펼쳐온 사람들에게 상처만 주고만 셈이다.

한일불교복지협회측은 “야스쿠니 궁사가 가키누마 스님에게 반환 약속을 한 1999년 이후 한국 외교부에서 이 문제를 다시 요청한 적이 없다”면서 “그런 기록이 있다면 야스쿠니 신사에 제시하고 따지겠다”며 관련 기록 공개를 요청했다.

그러나 외교부는 “그런 것은 제시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담당 과장은 또 “민간이 하는 일까지 정부가 일일이 들러리를 서야하느냐”며 “어차피 북한 유물이고 통일되면 돌려받게 될 것을 왜 서두르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주동진 한일불교복지협회 사무처장은 “대한민국 외교관의 귀에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 한복판에서 신음하는 우리 선조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같다”며 “그런 역사인식이 ‘조용한 외교’ 운운하다가 중국으로부터 ‘고구려사 빼앗기’ 뒤통수를 맞는 한국 외교를 만든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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