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은 이날 김우전(金祐銓) 광복회장 등 독립유공자 및 유족 150여명을 청와대 영빈관으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 하면서 이같이 밝히고 “지금부터라도 마음먹고 챙겨서 역사적 사실을 다 발굴하고 공로가 있는 분들은 반드시 포상이 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그동안 좌익 활동 경력이나 납북 사실 때문에 정부의 독립유공자 서훈(敍勳) 심사에서 유보돼 온 여운형(呂運亨) 등 중도계열 또는 좌파 독립운동가에 대한 서훈이 본격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또 “시대를 거꾸로 살아오신 분들이 득세하고, 그 사람들이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냉소하는 역사가 계속되는 한 한국사회에 미래가 없다”며 과거사 진상규명작업에 대한 강한 의지를 거듭 밝혔다.
노 대통령은 ‘과거사 규명보다 경제 살리기에 전력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선 “경제를 핑계로 국가적인 사업을 회피해 가려는 기도가 또 용납돼서는 안 된다”며 “모든 나라가 역사를 바르게 규명할 것은 하면서 경제를 발전시켰고, 그렇게 한 나라들이 경제를 더 잘하고 있다. 과거사 진상규명은 결코 경제에 지장이 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반민특위 알면 피 거꾸로 도는 사람 많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25일 또다시 ‘과거사 진상규명’에 대한 강한 의지를 천명했다. 이날은 독립유공자 및 유족들을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였다.
노 대통령은 특히 일제하 좌익계열에서 활동하면서 독립운동을 했던 인사들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 작업의 필요성을 언급해 지금의 보수-진보진영간 이념적 갈등과 대립상황에 새로운 논란의 불씨를 지핀 것으로 보인다.
김종민(金鍾民)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과거 사회주의 좌파의 독립운동도 밝혀져야 한다는 의미냐’는 질문을 받고 “기본 방향을 말한 것이지 특정 사안을 염두에 둔 얘기는 아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예를 들어 여운형의 독립운동 여부가 최근 논란이 됐는데 이런 것에 대한 재조명도 하나의 쟁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인사말에서 “프랑스의 경우 불과 4∼5년의 기간에 30만명이 정부로부터 레지스탕스로 공인받고 포상을 다 받았는데 우리는 의병시기까지 따지면 50∼60년이 훌쩍 넘는 침탈의 역사를 겪어왔는데도 아직 독립유공자로 1만명밖에 포상하지 못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을 꺼냈다.
이어 그 이유로 정부가 제대로 챙기지 못한 점과 좌우 대립 때문에 일부러 묻어둔 것도 있다는 점을 들면서 “내년이 광복 60돌인데, 60돌이 다 되도록 포상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은 유공자와 후손에게 참으로 미안한 일”이라고 말했다.
과거사 진상규명과 관련해서는 이전보다 발언의 강도가 훨씬 세졌다.
“반민특위의 역사를 읽는 많은 젊은 사람들이 가슴 속에 불이 나고, 피가 거꾸로 도는 경험을 다 한번씩 한다”고 했고 “시대를 거꾸로 살아오신 분들이 득세하는 역사가 계속되는 한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로 어떻게 갈 수 있으며, 가면 뭐하느냐. 어떻게 지켜낼 수 있겠느냐”고 강조했다. “주변의 강대국 속에서 많은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면서 살아야 하는데 오로지 자신의 보신만을 앞세워 재주껏 살아온 사람들로 채워진 국가가 어떻게 감당하겠느냐”고도 했다.
노 대통령은 또 “다른 나라 역사를 볼 때, 자기 나라와 공동체를 배반한 사람에게 적어도 새로 시작되는 사회에서 득세하지는 못할 수준으로 규제하는 정도의 청산은 꼭 있어야 한다”며 “다들 그렇게 했는데 한국은 못했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서 하려야 할 수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경제 우선론’에 대해선 “1987년에 온 나라가 뒤집힐 만큼 시민의 항쟁이 있었지만 1986∼88년 3년간 계속해서 두 자릿수의 경제성장을 지속했다. 매번 올바른 역사적 주장이 나올 때마다 경제 안보 혼란을 내세워 엎어버렸지 않았나. 경제는 경제대로 챙겨나가겠다”고 반박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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