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은 이날 자칭린(賈慶林)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을 만난 자리에서 고구려사 왜곡 문제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시하면서 ‘대화를 통한 이성적 해결’을 강조했다. 이에 후 주석은 구두메시지를 통해 ‘적절한 해결’을 약속했다. 나아가 자 주석은 “책임 있는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자 주석의 이번 방한은 김원기(金元基) 국회의장의 초청에 따른 것. 하지만 자 주석의 방한으로 고구려사 왜곡 문제가 양국간에 초미의 현안으로 대두된 상황에서 중국측으로서는 한국 내의 ‘반중(反中)’ 정서 확산을 서둘러 진화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이날 노 대통령과 자 주석간의 회동은 고구려사 왜곡 문제에 관한 대화를 나눈 탓에 당초 30분으로 예정됐던 접견시간이 55분으로 길어졌다. 노 대통령과 자 주석은 접견에 이어 1시간반가량 오찬을 함께했다.
노 대통령은 대화 과정에서 우리 국민의 반응이 심각하다는 점을 상세히 설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외빈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고구려사 문제’라는 표현을 썼고, ‘왜곡’이라는 단어는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이날 회동에서 후속조치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는 없었다. 후 주석의 메시지도 서면이 아닌 구두로 전달됐고, 공동발표문과 같은 문서로 된 합의도 없었다. 하지만 ‘중국측의 성실하고 책임있는 대처’ 약속을 담은 김종민(金鍾民) 청와대 대변인 명의의 ‘접견 결과 보도자료’는 중국측과 사전 조율을 거쳐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변인은 접견 후 브리핑에서 “오늘로 문제가 다 해결됐다고는 보지 않으며, 오늘의 논의를 기초로 해서 문제 해결이 시작되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매듭을 푸는 첫발을 내디뎠을 뿐이라는 얘기다.
그렇지만, 양국 정상이 문제 해결 의지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24일 최영진(崔英鎭) 외교통상부 차관과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아시아담당 부부장 간에 합의한 중국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차원의 고구려사 왜곡 시도 중단 등 5개항의 양해사항에 관한 외교당국간 실무 협의는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자 주석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김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를 만난 자리에서도 고구려사 왜곡 파문과 탈북자 문제 등에 전향적인 입장을 보였다. 회담 내내 “전면적인 협력동반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또 탈북자 문제에 대해 자 주석은 “양국 간에 다소 의견 차이가 있으며 중국은 이들을 난민으로 보지 않는다”면서도 “양국이 상호 존중과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노력한다면 입장 차에도 불구하고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두 메시지》
문서 형식인 친서와 달리 구두로 뜻을 전하는 형식. 이번의 경우 정확한 의미 전달을 요하는 민감한 현안이어서 후 주석의 구술을 적어와 그대로 읽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
▼고구려 관련 후진타오 메시지▼
최근 중한 관계는 고구려 문제로 일정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나와 중국 정부는 큰 관심을 갖고 이번에 자 주석에게 대통령과 이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토록 부탁했습니다. 우리 양측이 다같이 양국 관계의 대국적 장기적 전략적인 견지에 서서 서로 존중하고 진심으로 대하기만 하면 우리는 충분한 지혜를 갖고 서로의 관심사를 적절히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양국 관계를 계속 올바른 방향으로 건전하게 안정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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