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美 무역보복 승인]韓-日-EU “되로 주고 말로 받을라…”

  • 입력 2004년 9월 1일 18시 51분


《세계무역기구(WTO) 사상 최대의 통상마찰로 꼽히는 미국의 버드 수정법 관련 분쟁에서 WTO가 한국 유럽연합(EU) 일본 등이 제기한 대미(對美) 무역보복 신청을 승인함에 따라 세계 통상전선에 난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WTO의 이번 결정은 세계 최대의 교역국인 미국을 겨냥하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인 미국 정부와 의회가 WTO의 권고대로 수정법을 자진 폐기할 가능성은 적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제소국들은 미국과 막후 협상에 나서겠지만 미국이 미흡한 조치를 내놓는다면 양측은 ‘무역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맞닥뜨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WTO, 미국의 오만에 철퇴=WTO는 “미국이 반(反)덤핑관세 부과로 생긴 수입을 자국 업계에 분배토록 한 버드 수정법은 이중처벌에 해당하므로 부당하다”며 8개국이 신청한 대미 무역보복조치를 승인한다고 지난달 31일 발표했다.

이에 따라 8개국은 다음 달 WTO 분쟁조정위원회의 추인이 이뤄지면 미국 제품에 대해 총 1억5000만달러 규모의 보복관세를 부과할 권리를 확보하게 된다.

WTO의 이번 결정은 WTO 안팎에 팽배한 ‘미국 불신’ 분위기를 감안할 때 이미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WTO는 지난해 6월 “버드 수정법은 자유무역 원칙에 입각한 WTO 협정에 위배된다”며 미국에 같은 해 12월 27일까지 철폐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그럼에도 미국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자 올해 초에는 “WTO 규정에 대한 미국의 일관성 없는 태도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미국은 부정적 반응=미 무역대표부(USTR)는 “WTO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의회와 긴밀히 협력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상원 재무위원회는 “WTO의 결정은 실망스러운 일”이라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특히 미국의 정치적 상황을 감안할 때 법안 폐지권을 갖고 있는 의회가 WTO의 요구에 응하는 것을 기대하는 건 무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대선을 앞둔 미묘한 시기인 만큼 미 의회 내에 법안 폐지에 나서려는 분위기는 없다”면서 조지W 부시 행정부가 국내산업 보호라는 실리와 자유무역원칙 준수라는 명분 사이에서 결국 전자 쪽으로 기울 것이라고 전했다.

▽당분간은 힘겨루기=일본과 EU는 내심 ‘무역보복’ 카드로 미국을 위협해 보복관세를 발동하기 전에 미국 스스로 버드 수정법을 폐기하기를 바라고 있다.

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 일본 경제산업상은 “적절한 조치이고 금액도 적당하다”며 WTO의 결정을 환영하면서도 “보복조치 발동이라는 사태에 이르지 않도록 미국이 조속히 폐기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또 “미국의 대응 외에 EU의 행보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해 대미 보복에 먼저 나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발 빠르게 보복 대상 품목 선정에 착수한 EU도 총대를 메지 않겠다는 입장은 일본과 마찬가지.

따라서 다음 달 초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선진7개국(G7) 정상회담에선 미국과 ‘비(非) 미국’ 진영간에 상대방 진의에 대한 탐색과 함께 치열한 신경전이 전개될 전망이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버드수정법(Byrd Amendment Act):

미국 세관이 외국 업체로부터 거둔 반덤핑 및 상계관세 부과금을 제소자(피해자)인 미국업체들에 배분토록 의무화한 규정. 법안 발의를 주도한 로버트 버드 상원의원(민주당)의 이름을 딴 것으로 정식 명칭은 ‘지속적 덤핑과 보조금에 관한 상쇄법’이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2000년 10월 28일 발효됐다. 주로 미국 철강산업 보호를 염두에 두고 제정됐으나 이후 화학, 식음료, 의약품 등 다른 분야에까지 폭넓게 적용됐다.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은 미국 정부가 반덤핑 관세를 부과해 챙긴 수입은 덤핑으로 피해를 본 미국 업자에게 돌려주는 게 타당하다는 논리를 폈다. 이에 대해 한국 일본 EU 등은 “외국기업에 벌금을 부과한 뒤 이를 미국 경쟁기업에 기술개발비나 의료비, 연금 등의 형태로 분배하는 것은 이중처벌에 해당할 뿐 아니라 반덤핑 제소의 남발을 유도할 우려가 있다”며 반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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