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임상원/‘신문법’에 감정을 담을 셈인가

  • 입력 2004년 9월 1일 18시 59분


‘언론개혁’은 대통령과 집권 여당, 그리고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가장 자주 언급하는 말 가운데 하나다. 그동안은 그 구체적 내용과 방법이 불분명했는데, 최근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검토하고 있는 ‘언론개혁’ 관련법안 내용이 일부 알려졌다.

▼시장점유율 규제 어디에도 없다▼

신문법을 만들어 (1)상위 3개 신문사의 신문시장 점유율이 전체의 65∼70%, 1개 신문이 전체의 20∼25%를 넘을 경우 이를 시장지배로 보고 과징금을 부과하며 (2)한 개인이나 가족의 지분이 30%를 넘을 경우 초과지분에 대한 의결권을 제한하고 (3)신문유통공사를 만들어 작은 신문들의 시장 진입을 쉽게 하여 큰 신문들의 독과점을 방지한다는 것 등이다. 이와는 별도로 언론보도로 인한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까지 거론되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이란 언론보도로 인한 피해에 대한 보상 외에 2, 3배의 배상금을 더 물리는 제도다.

이런 법안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에는 긴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 법안은 합당하지도 않고 실효성도 별로 없다. 법안은 신문 구독자 시장의 점유율이 높다는 것이 곧 여론시장의 지배력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제하고 있는데 이것은 여론이 무엇인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사고의 결과다. 뉴욕타임스가 어디 발행부수가 많아서 그토록 강력한 영향력을 갖는다는 말인가.

몇 % 이상은 안 된다는 식으로 시장점유율을 규제하면 국민이 신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정부가 제한하게 된다. 더욱이 시장점유율이란 개념도 불분명하고 현재로선 구체화하기도 어렵다. 이런 법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

특정 개인의 신문사 소유지분을 제한하는 문제도 그렇다. 소유지분의 제한 이유는 편집권 독립을 위한 것이라는 전제가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이 조항이 위헌적 요소가 있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편집권 독립을 위하여 소유주의 간섭을 구조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견 매력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타당하지 않다. 이는 일부의 예를 전체의 문제로 성급하게 일반화하는 논리적 오류다. 우리 사회에서도 그 반대인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신문유통공사를 만들어 공동배달제 및 판매제를 하자는 주장도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정부가 이런 조직을 갖게 되면 정부가 특정 신문을 키우고 죽이는 것도 가능하다. 군소신문의 생존을 쉽게 한다는 목적이라지만 목적이 수단을 항상 정당화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상식이다. 징벌적 배상제도는 더 말할 가치도 없다. 이런 법은 언론의 자유를 기본적으로 저해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런 법 아래에서 무서워서 어떻게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할 것이며 부정부패를 폭로할 수 있겠는가.

열린우리당의 신문법안에는 이런 구체적인 문제 외에 보다 심각하게 성찰해야 할 점이 있다. 이 법안 밑바탕에는 동아 조선 중앙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스며 있는 것 같다. 우리에게 분노해야 할 역사가 있을지 모르나 미래를 설계할 때는 그런 것은 잊어야 한다. 언론개혁이나 신문법은 이 시대 그리고 미래를 위한 것이지 과거를 위한 것이 아니다.

▼‘빅3’에 대한 여권의 분노 반영▼

이제는 언론문제에 우리 사회가 좀 차분해질 때도 되었다. 해결 가능한 문제와 해결이 불가능한, 그래서 해소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문제로 나누어 해결할 것은 해결하고 그렇지 못한 것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함께 사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신문법 같은 것을 만들려면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온당하다. 신뢰할 수 있는 발행부수와 같은 경영자료부터 확보한 뒤에 이를 근거로 점유율을 논해도 늦지 않다. 자료도 없이 어떻게 여론시장을 규제하겠다는 것인가.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합당하지도 않고 실효성도 없는 법은 재고하는 것이 순리다.

임상원 고려대 명예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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