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태현/‘홀로된 한국외교’ 어찌할까

  • 입력 2004년 9월 3일 18시 53분


미하엘 가이어 주한 독일대사가 한 연설에서 한국과 독일을 비교하면서 독일은 미국 및 주변국과의 관계가 밀접한 데 반해 한국은 외교적으로 고립돼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독일이 미국 등과 밀접한 관계라고? 철저한 자기반성으로 관계를 개선한 프랑스 등 주변국과는 그렇다 치더라도 미국의 경우는 뭔가. 2차 세계대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다. 독일은 프랑스, 러시아와 함께 미국의 이라크 정책에 제동을 걸었다. 단 한 명의 병사도 파견하지 않았고 이라크에 대해 단 한 푼의 경제지원도 하지 않았다. 반면 한국은 미국의 요청에 따라 영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병사를 파견했다. 그런데도 독일은 미국과 정치적으로 밀접한 관계 속에 살아가고 있지만 한국은 거의 홀로 서 있다는 것이다.

▼변화에 둔감한 리더십이 문제▼

외교의 프로가 관찰한 것이니 아마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주변 4강이 세계 4강인 지정학적 조건과 무역의존도가 60%가 넘는 지경학적 조건상 외교적 고립은 한국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단적으로 말해 지난 십수년간 국내외에서 누적적으로 진행된 안보환경의 변화에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 정부뿐 아니라 지난 정부들도 그랬다. 지금의 세계는 고도의 불확실성으로 특징지어진다. 불확실성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식견, 흐름의 방향을 짚어 그에 앞서 포석을 하는 전략성, 그리고 온갖 개연성에 대한 민첩한 대응이 필요한 시대다. 역대의 정부는 그와 같은 식견과 전략적 사고와 행동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국내 환경의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의 결여 때문이다. 세계화로 외교문제가 대중화되고, 민주화로 외교정책과정이 민주화됐다. 온갖 외교현안에 대해 각종 사회세력이 백가쟁명식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국익에 따라 국가전략의 방향을 설정하고 그에 필요한 정치적 지지를 동원할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은 없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과거의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어 잘못을 교정하기는커녕 오히려 반대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데 있다.

민주화란 곧 국민이 주인됨이다. 주인의식이 고양된 국민은 매서워졌다. 권력의 오만과 부패를 여지없이 심판한다. 주인의식이 고양된 국민은 또한 민족주의적 정서를 가진다. 이 나라가 내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민을 상대로 살아남아야 하는 정치인들은 포퓰리스트가 된다. 정치인들은 다들 포퓰리즘적 정치전술에 호소하고, 그에 능한 정치인들이 살아남는다.

정치적 포퓰리즘의 특징 중 하나는 대중여론에 영합하는 것이다. 즉 정치인들이 정치지도자가 되지 않고 피(被)지도자가 된 것이다. 그러나 외교, 특히 안보문제의 경우 여론을 조심해서 읽어야 한다. 대다수 국민에게 안보라는 가치는 극히 추상적이다. 또 고도로 전략적인 안보게임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따라서 실리보다는 명분에 쏠린다. 냉철한 계산에 따라 대응하기보다 정서적으로 대응한다.

▼안으론 분열, 밖으로는 고립…▼

정치적 리더십은 이럴 때 필요하다. 국민을 상대로 안보문제를 피부에 와 닿게 설명하고, 국민을 끌고 가야 한다. 그러나 역대정권은 정반대로 행동했다. 국민의 정서에 편승해 외교안보 문제를 다뤘다. 그럼으로써 단기적 정치이익을 챙기려고 했다. 그 결과가 안으로는 소위 ‘남남갈등’으로 불리는 사회적 분열과 혼란, 밖으로는 외교적 고립이다.

한국 사회의 정치판도가 어떻게 돌아가든 세계는 더 큰 힘으로 굴러간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정치지도자가 멀리, 크게 보지 못하고 눈앞의 작은 이익에 집착한다면 결국은 큰 것을 잃는다. 지도자의 실패는 그만의 실패가 아니라 국가의 실패이니 더 큰 문제다.

김태현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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