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통령, 헌법기관과 대립각 세워서야

  • 입력 2004년 9월 5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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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5일 MBC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국가보안법 폐지 의견을 밝힌 것은 대통령으로서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존치의 필요성을 강조한 판결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의견을 내놓았으니 그 취지의 옳고 그름을 떠나 사려 깊지 못했다는 지적은 면할 수 없다고 본다.

대법원과 헌재는 헌법기관이다. 그 견해는 존중되어야 한다. 대통령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기에 앞서 국가원수로서의 지위를 갖고 있다. 자칫하면 국가원수가 헌법기관을 스스로 부정하는 격이 될 수도 있다. 행정부 수반 자격으로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 경우에도 국회에 정식으로 입법 의견을 제시하면 된다.

지난날 국보법의 폐해에 대한 대통령의 지적에는 공감할 부분이 있다. “국가를 위태롭게 한 사람들을 처벌한 게 아니라 정권에 반대한 사람들을 처벌하는 데 주로 쓰여 왔다”는 것도 일정 부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얘기다. 현행 국보법도 1991년 개정된 이후 자의적 적용의 위험성은 대폭 제한됐다. 헌재나 대법원도 과거 국보법의 인권 침해를 옹호한 것은 아니잖은가.

우리처럼 정파와 세대에 따라 서로 생각이 달라 국가적 현안마다 분열 양상을 보이는 나라에선 대법원과 헌재의 결정은 법리(法理)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사안별로 시비를 가려 줌으로써 사회가 극단적인 혼란으로 치닫는 것을 막아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바른 순서다. 국회에서도 논의가 분분하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할 정도로 민감해 진전이 더디지 않은가.

법의 상징성이 너무 커서 찬반이 첨예하게 갈려 있는 문제를 놓고 대통령이 방향을 미리 제시하고 그쪽으로 몰아가는 듯한 인상을 주면 균형 잡힌 생산적 논의를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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