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국가보안법 폐지 발언과 관련, 한나라당은 7일 '무더기 논평'을 내고 이를 막기 위해 정면 대응할 것임을 분명하게 밝혔다.
특히 한나라당이 '트로이 목마'를 거론하며 국보법 폐지를 주장하는 세력을 북한과 연계시킴으로써, 정국은 다시 '색깔론'의 소용돌이 속에 휩싸이게 될 전망이다.
한나라당은 이날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과 관련해서만 무려 5개의 논평을 내고, 노 대통령과 여당의 논리에 반박하고 나섰다.
김성완(金成浣) 부대변인은 "국보법 폐지는 '미군철수' '연방제'와 함께 북한이 남한을 적화통일하기 위해 50년 동안을 변함없이 주장해온 것"이라며 "왜 노대통령이 자신의 재임 기간중 한꺼번에 북한의 요구를 다 들어주려 서두르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부대변인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는 것은 반국가활동을 허용하자는 것"이라며 "이를 주장하는 세력들은 '트로이 목마'가 아닌가 의심해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도 개정을 주장했지 폐지까지 추진하진 않았다"며 "노 대통령 자신도 후보 시절 토론회에선 '폐지라는 표현은 잘못되었다'고 밝힌 바 있는 만큼 대국민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임태희(任太熙) 대변인도 "노 대통령이 폐지 발언을 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적단체로 규정된 범민련의 이종린(李鍾璘) 명예의장이 '현 국보법을 가지고 심판한다는 사실이 무의미하다'며 출두를 거부하는 일이 발생했다"고 개탄했다.
임 대변인은 "법 준수에 앞장서야 할 대통령이 국가 수호의 상징인 국보법을 박물관에 보내겠다는데 누가 법을 지켜려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유사한 재판을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도 법을 부정하고 재판을 거부하는 사례가 발생할 것이 뻔하다"며 "이러다간 대한민국의 존립과 안위마저 흔들리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전여옥(田麗玉) 대변인 역시 "국가보안법은 그 시대적 용도가 분명 있는 법"이라며 "상대국인 북한이 남한 적화통일을 적시하고 있는 한 반드시 지킬 명분과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전 대변인은 "국보법은 정치적 도구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정체성과 생존의 문제"라며 "만일 폐지할 경우 우리에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구상찬(具相燦) 부대변인은 노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헌재와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웃기지 말라'고 조롱한 것이며, 그의 말대로 '이쯤되면 막하자는 것이다'"라고 힐난했다.
구 부대변인은 또 "어떤 사안에 대해 위기를 맞으면 폭발직전까지 몰고가서 좌우냐 선후냐만을 택하는 양분법을 통해 하나로 몰아가는 북한의 벼랑 끝 외교와 다름없다"며 노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을 비난했다.
반면 이정현(李貞鉉) 부대변인은 "열린우리당 안에도 폐지를 반대하는 이성적인 인사들이 수두룩하게 많다"며 '적진'에 호소하고 나섰다.
이 부대변인은 "특히 장차관을 지낸 분들과 행정관료 출신들, 반듯한 기업을 운영했던 분들, 군 출신들, 합리적 사고를 가진 분들은 국가보안법 개정은 모르되 폐지는 절대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세상이 다 안다"고 말했다.
이 부대변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한마디했다고 해서 일시에 침묵으로 변하는지 연민의 정마저 느끼게 된다"며 "대통령의 한마디에 '거수기'로 전락해선 안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열린우리당내) 온건개혁파는 서민경제가 위기라고 말하다가도 대통령이 문제없다 하면 침묵한다"며 "지금이라도 노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을 바라보고 정치를 해야 옳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러나 이같은 대응에도 불구, '국가보안법 존속후 개정'이라는 한나라당의 입장이 관철될 수 있을 지 여부는 불투명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내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여당이 이미 노대통령의 언급을 계기로 '폐지후 보완' 쪽으로 가닥을 잡은데다, 제3당인 민주노동당 역시 "추석 전에도 폐지 가능하다"며 적극 찬성하고 있기 때문.
여기에 새천년민주당까지 당론으로 '폐지'를 결정, 노대통령의 발언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따라서 이번 정기 국회에선 지난 3월의 '탄핵 정국' 때와 맞먹는 규모로 정치 세력간 충돌이 재연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한나라당 김덕룡(金德龍) 원내대표가 7일 국가보안법 폐지와 관련,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처하겠다"고 언급한 점도 이러한 충돌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재준 기자 zz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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