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동행하는 기업인의 면면은 지난해 5월 대통령의 미국 방문 때와 비슷하다.
이건희(李健熙) 삼성그룹 회장, 구본무(具本茂) LG그룹 회장, 정몽구(鄭夢九) 현대-기아자동차 회장 등 이른바 ‘오너 빅3’를 포함해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 5단체장이 모두 대통령과 동행한다.
하지만 재계에 따르면 상당수 기업은 이번 러시아 방문의 성격이 작년과는 다소 다른 것으로 보고 있다.
대통령의 작년 방미 때는 북핵문제, 촛불시위, 한국 내 반미 감정 등 한미 관계에 악재가 이어져 우리 경제에 치명타로 작용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어떤 대통령 해외순방 때도 동행한 적이 없던 이건희 회장조차 함께 미국에 갔다는 것.
일부 기업에서는 마지막까지 ‘눈치 보기’를 하던 중 청와대가 7일 동행자 명단을 덜컥 발표하기로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따라가게 됐다는 말도 나온다.
전경련은 이번 러시아 방문 기간 강신호(姜信浩) 회장의 역할에 대해 “대통령이 러시아 경제인을 만날 때 배석은 하겠지만 특별한 역할이 없다”고 털어놨다. 대한상의 등 다른 경제단체도 마찬가지 사정을 전해왔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내용을 발표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현재 러시아에 연산 7만대가량의 조립공장을 운영 중인 현대차는 이번 방문을 통해 현지 생산 능력을 10만대 이상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현대차도 정몽구 회장이 이번에 러시아에 가야할지를 꽤 오랫동안 고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상선은 노정익(盧政翼) 사장이 동행하지만 러시아에 벌여 놓거나 새로 추진할 만한 사업이 없어 고민 중이다. 신헌철(申憲澈) 사장이 동행하는 SK㈜도 “러시아에 윤활유를 수출하고 있지만 현지에서 사장이 직접 챙길 만한 사업 아이템이 없다”고 실토했다.
다만 LG그룹은 “러시아 타타르스탄 자치공화국 수립 이래 가장 큰 규모인 30억달러어치의 석유화학플랜트 사업 수주 계약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관계자는 “외국에서도 국가 원수가 다른 나라에 가면 기업인들이 대거 동행해 비즈니스를 하는 경우가 있지만 우리처럼 ‘대통령 행차’ 때마다 기업경영에 바쁜 경영자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따라나서야 하는 관행은 다시 한번 생각해볼 문제”라고 지적했다.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김태한기자 freewill@donga.com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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