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분담금 요구]행사 차질없는데 왜 돈 내라고 했나

  • 입력 2004년 9월 8일 18시 42분


삼성 고위 임원에게 대통령 참석행사의 비용 분담을 요구한 양정철 대통령홍보기획비서관이 8일 국회 운영위에 출석해 언론에 거짓말을 한 경위 등을 설명했다.-서영수기자
삼성 고위 임원에게 대통령 참석행사의 비용 분담을 요구한 양정철 대통령홍보기획비서관이 8일 국회 운영위에 출석해 언론에 거짓말을 한 경위 등을 설명했다.-서영수기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참석한 ‘디지털방송시대 선포식’ 행사의 비용 분담을 삼성그룹에 요구해 물의를 빚은 양정철(楊正哲) 대통령홍보기획비서관의 해명에 대해 이 행사를 공동 주최했던 방송위원회와 산업자원부가 사실과 다르다고 밝히면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또 산자부가 가전업체에 비용 분담 의사를 타진하는 전화를 하게 된 경위에 대해서도 방송위와 산자부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디지털방송시대 선포식’은 7월 14일 디지털TV 전송방식이 4년간의 논란 끝에 미국식으로 결정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였다.

▽순조롭게 진행됐는데 왜 나섰나=양 비서관은 가전업체들이 행사비를 분담키로 했다가 어렵겠다고 한 사실을 전해 듣고 행사 차질을 우려해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고 7일 해명했다.

하지만 방송위와 산자부는 “행사 준비는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왜 대통령비서관이 행사 차질을 우려해 기업에 전화를 걸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청와대에 엄연히 산업 분야를 담당하는 산업정책비서관이 있는데 홍보기획비서관이 직접 기업에 전화를 건 것도 의문이다. 그러나 선포식이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인 데다 행사 취지도 방송과 관련된 것이어서 양 비서관이 주무 비서관이었다는 게 청와대측 설명이다.

▽8월 24일경 예산 확정됐는데 왜 8월 말에 전화했나=양 비서관은 “9월 3일의 행사가 임박한 시점인 8월 말에 가전업체들의 입장이 바뀌었다는 소리를 듣고 전화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방송위측은 “당초 정부 주최 행사의 비용을 기업체가 분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제기돼 8월 24일경 정부와 방송사의 부담으로 행사를 치르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즉 가전업체가 행사비를 분담하기로 최종 결정한 사실이 없는데도 양 비서관이 행사가 임박한 시점에 삼성그룹에 비용 분담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양 비서관은 또 “(기업이 분담을 거절해) 차질이 빚어진 부분은 우리 방(비서실)에서 유관 기관과 협의해 방송발전기금을 끌어다 쓰기로 했다”며 “몇몇 곳에서 (분담 거절로) 행사 차질이 빚어졌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도 방송위측은 “행사비용 마련과 관련해 청와대와 협의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산자부는 “청와대 관계자가 가전업체가 분담하지 않는 게 맞느냐고 물어봐 ‘그렇다’고 했으나 그 때문에 차질이 우려된다고 말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산자부와 방송위의 주장도 엇갈려=산자부는 이 행사를 준비하던 8월 초 가전업체에 전화를 걸어 행사비용 분담 의사를 타진했다고 밝혔다. 산자부 관계자는 “방송위가 행사 기획안을 제시하면서 예산이 없으니 3개 가전업체에 비용을 분담시키자고 해 업체에 전화했지만 거절당했다”고 설명했다. 산자부는 정부 주최 행사의 비용을 업체에 부담시키기 어렵다고 했으나 방송위가 거듭 요구해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방송위 관계자는 “산자부 소관 사항인 가전업체에 대해서는 언급한 적이 없고 기업체에 직접 연락한 적도 없다”며 “왜 이번 사태의 원인을 방송위에 떠넘기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방송법의 방송발전기금 설치 규정에 따라 방송위가 운용하는 자금이다. 지상파 방송사의 광고 매출액 일부와 방송법 위반시 부과되는 과징금 등으로 조성되며 한해 1000억원 규모다. 방송 및 문화예술 진흥사업에 사용된다. 방송위는 “‘디지털방송시대 선포식’은 차세대 성장 주도 산업으로서 디지털TV의 연관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행사로 기금의 지원 대상이 된다”며 “7억4000만원의 행사 예산 전액을 기금으로 충당할 내부 계획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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