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 법적 문제점

  • 입력 2004년 9월 8일 18시 45분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은 역사의 진실을 확인하기 위한 법이지 처벌을 전제로 한 법이 아니다. 그러나 조사과정에서 또는 조사결과에 따라 개인의 명예와 인격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어 기본권 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또 사실상 연좌제에 해당돼 헌법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인격권 침해 위험 많은 개정안=개정안은 진상규명위원회 관계자들의 업무상비밀누설 금지를 규정한 조항을 삭제했다. 개정안은 또 조사대상자를 음해할 목적으로 허위진술을 하거나 허위자료를 제출한 사람에 대한 처벌조항마저 삭제했다. 결과적으로 허위 사실로 인한 명예훼손과 이에 따른 인격권 침해 가능성이 기존법보다 훨씬 커졌다.

조사과정에서 누출된 정보가 사실로 확인되거나 조사결과가 진실에 부합하는 경우에도 인격권 침해의 문제가 남는다. 예컨대 국가기관이 특정인물을 친일파로 공개할 경우 그 유족이나 자손은 ‘친일파의 자손’으로 낙인찍혀 인격권을 침해당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물론 공인(公人)의 경우 이 같은 상황을 참고 견딜 의무가 있지만, 사인(私人)의 경우엔 인격권 침해의 책임이 면제되지 않을 수도 있다.

▽헌법 제10조 위반 가능성=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 규정이 다른 헌법규정을 기속하는 최고의 헌법원리라며, 행복추구권에 인간의 존엄성에 바탕을 둔 인격권을 포함시켜 왔다. 인격의 내용을 이루는 윤리적 가치로는 명예 이름 초상 등을 들 수 있다.

따라서 인격권 침해는 헌법 제10조 위반이 된다. 서울고법의 중견판사는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은 기본권 침해 위험성이 상당히 높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을 지낸 한수웅(韓秀雄) 홍익대 교수는 헌법재판소 논문집에 발표한 논문에서 국가가 정보나 자료를 활용해 개인에 대한 ‘사회적 인격상(像)’을 형성하는 경우에도 인격권 침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사회적 이미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권리도 인격권에 속한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금치산 선고의 공고’처럼 국가기관이 개인의 인격을 비하하는 정보를 일반에 공개하는 것도 인격권 침해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연좌제와 헌법 제13조 위반 여부=연좌제란 행위자와 일정한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그 행위의 연대책임을 지우는 제도를 말한다. 이는 근대법의 이념인 ‘자기책임의 원리’에 반한다. 그래서 우리 헌법도 제13조 3항에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친일진상규명법은 사실상 연좌제에 해당될 수 있다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나오고 있다. ‘친일파의 자손’이라고 낙인찍히는 것은 형벌 못지않은 ‘불이익한 처우’가 될 수 있다는 것. 서울중앙지법의 중견판사는 “조상의 친일행각이 공론화될 경우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며 “그렇다면 그것이 연좌제 아니고 뭐냐”고 말했다.

▽헌법소원 제기요건과 시기=친일진상규명법의 시행으로 기본권을 침해당한 사람은 헌법재판소에 이 법률의 위헌을 구하는 헌법소원을 낼 수 있다. 또한 기본권을 침해당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도 헌법소원을 낼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1992년 10월 서울대학교 입시요강 관련 헌법소원 사건에서 “기본권 침해가 장래에 발생하더라도 그 침해가 틀림없을 것으로 현재 확실히 예측된다면 침해의 현재성을 인정한다”고 판시했다.

허영(許營) 명지대 석좌교수는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은 조사대상자의 명예와 그 자손의 명예감정을 훼손할 가능성이 커 위헌시비를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개정안이 시행된 뒤에야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다.


이수형기자 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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