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선언]“대한민국이 친북-좌경-반미세력 손아귀에”

  • 입력 2004년 9월 9일 18시 44분


9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비상시국선언대회’에 참석한 350여명의 원로 인사가 시국선언문이 발표되자 박수를 치고 있다. -권주훈기자
9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비상시국선언대회’에 참석한 350여명의 원로 인사가 시국선언문이 발표되자 박수를 치고 있다. -권주훈기자
9일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시국선언’을 한 1074명에는 정·관계와 법조계 교육계 언론계 의약계 종교계 등 한국 사회 전 분야의 원로인사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과거 일부 정치계나 시민사회단체, 종교계 원로들이 사회적인 큰 이슈가 있을 때 발표했던 시국선언과는 그 규모 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난다.

국가적 위기상황이었던 대통령 탄핵 파문 당시 찬반양론으로 갈라진 국론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는 시국선언을 했던 사회원로는 80여명이었다.

▽“대통령이 나서서 국보법 폐지라니…”=이날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는 원로들의 우려와 불만이 어렵지 않게 감지됐다.

삼삼오오 모인 원로들은 “밤잠이 안 올 정도로 불안하다”, “국론 분열 정도가 아니라 국가의 분열 상황이다”며 현 정권을 질타했다. 참석자들은 “대통령이 사법부의 의견을 무시하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면서 “국보법뿐 아니라 행정수도 이전 등 모든 의제를 국민의 뜻과 상관없이 소수 의견대로 밀고 나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발표된 시국선언문 역시 “국보법 존폐 문제, 행정수도 이전 문제, 과거사 청산 등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의제들을 서둘러 해결하려 해선 안 된다”면서 “안보 및 경제 분야에서의 안정을 가져온 뒤에 각계각층의 논의를 거쳐 해결해도 늦지 않다”고 밝혔다.

원로들의 불안은 이날 회의장에서 급기야 ‘대통령 탄핵’까지 재거론하기에 이르렀다.

한광덕 전 예비역 육군소장은 주최측에서 준비한 ‘국회는 대통령을 탄핵하라’는 결의문을 낭독,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국보법 폐지 발언은 헌법을 정면에서 부정하고 도전하는 발언”이라며 “대통령의 헌법수호 책무를 위반한 만큼 국회는 탄핵소추를 발의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며 공감을 표시했지만, 일부 원로들은 “합의된 결정이 아닌 한 단체의 의견일 뿐”이라며 당황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배경 및 의의=이날 원로들의 시국선언은 최근의 국보법 존폐 및 과거사 청산 논란으로 야기된 사회적 분열 양상이 주요한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국보법의 존재 이유를 인정했음에도 노 대통령이 5일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국보법 폐지를 주장하자 국가정체성에 대한 원로인사들의 위기의식이 발동했다는 지적이다.

이번 시국선언은 여러 원로들이 상당 기간 논의한 끝에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맨 처음 채명신(蔡命新) 전 주월한국군사령관과 이상훈(李相薰) 전 국방부 장관 등 10여명이 6월 말 첫 모임을 갖고 “혼탁한 사회에 대해 원로들이 후손들에게 경고할 시점”이라는 의견을 나눴다.

이후 10여 차례의 회동을 갖고 정기승(鄭起勝) 전 대법관이 공동의장으로 있는 ‘자유시민연대’를 통해 각계 원로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방식으로 이 같은 선언문을 마련했다.

정 전 대법관은 “청소년과 학생들을 포함해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 모두에 이 땅의 민주주의가 손쉽게 얻어진 것이 아님을 알려주고 싶다”면서 “현재의 자유가 6·25세대의 숭고한 희생을 바탕으로 이뤄졌듯 이를 수호하는 데도 엄청난 대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참석한 안응모(安應模) 전 내무부 장관도 “건국 및 호국세력을 적으로 돌리고 대통령이 나서 국보법 폐지를 주장하는 현재 상황이 너무도 불안하다”면서 “더 이상 대한민국의 가치가 훼손돼 가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는 데 사회원로들이 공감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양환기자 ray@donga.com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시국선언문▼

대한민국의 국가이념은 대의정치와 시장경제에 바탕을 둔 자유민주주의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는 운동권 출신 386세대를 비롯해 ‘친북·좌경·반미 세력’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있다. 4·15총선에서는 소위 ‘진보’의 가면을 쓴 ‘친북·좌경·반미 세력’이 대대적으로 국회에 진출했다. 남파간첩과 빨치산을 대통령 직속 국가기관이 ‘민주화 유공자’로 둔갑시키고 있다. 일부 민간단체들과 TV 방송매체들은 정도를 일탈하여 편파가 극에 이르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비상시국에 처해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국론을 분열시키는 소모적 현안의 일방적 추진을 중단하고 시급한 현안 해결에 집중하라. 미국은 맹방으로서 대한(對韓) 안보 공약을 계속 성실하게 이행하라. 대한민국의 위기상황을 걱정하는 모든 국민들은 대한민국이 통일조국 실현의 주체가 될 것임을 북한에 분명히 알려주자.

▼결의문▼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헌법 제66조(헌법 수호 책무), 69조(헌법 준수)를 중대하게 위반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헌재와 대법원의 견해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하는 폭거를 보여주었다. 노 대통령은 “위헌이든 아니든 악법은 악법”이라는 폭언을 서슴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국가보안법 관련 발언을 취소·철회하고 국민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한다. 이에 불응할 경우 국회는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발의할 것을 요구한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저지하기 위해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모든 국민들이 총궐기할 것을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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