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양강도 폭발]군수공장-미사일 폭발 가능성에 무게

  • 입력 2004년 9월 12일 18시 38분


북한 양강도 김형직군 월탄리에서 발생한 폭발사고의 실체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고 원인 등을 둘러싼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때 핵실험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한미 정부 당국은 위성사진 판독 등을 근거로 그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신 군수공장 또는 미사일 폭발 가능성 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핵실험 가능성은 희박=일부 언론이 12일 오전 서울의 소식통을 인용해 직경 3.5∼4km의 ‘버섯구름’ 형태의 연기를 봤다고 전하면서 한동안 핵실험 의혹이 제기됐다. ‘버섯구름’이라는 단어 자체가 지상 핵실험을 연상케 한 것.

그러나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은 물론이고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도 이 같은 가능성을 한마디로 일축했다. 심지어 미 국무부의 한 관리는 “버섯구름이 아닌 일반적 형태의 연기가 있었다는 얘기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 포스트는 12일 미 정부 관리를 인용해 “최근 미국 정부가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핵실험이 실시될 만한 지역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었다”며 “그러나 이번 의문의 폭발이 일어난 김형직군은 미국이 주목하던 곳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폭발이 일어난 김형직군의 위치로 볼 때도 핵실험 가능성은 낮다. 핵실험을 해 방사능 낙진이 중국 쪽으로 날아갈 경우 맹방인 중국을 자극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북한 체제 특성상 김일성의 아버지 이름(김형직)을 딴 지역에서 방사능 오염을 각오하고 핵실험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의도된 사고(?)=미 행정부는 일단 북한이 ‘의도적으로’ 핵실험 의혹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움직임을 벌였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미 행정부의 한 핵심 관계자는 12일 본보 기자에게 “북한이 현 시점에서 성취하고자 하는 것은 핵실험 자체가 아니라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이 주변국들을 혼란에 빠뜨려 6자회담 등의 핵협상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의도를 갖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와 관련해 북한이 다이너마이트 등 대량의 재래식 폭발물 등을 폭파시켜 핵실험 의혹을 불러일으킬 만한 효과를 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핵실험을 하지는 않았더라도 주변국들이 핵실험 의혹을 가져주는 것을 그리 나쁘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

향후 예상되는 북한의 돌발 행동을 검토해 온 미 행정부는 북한의 △핵실험 강행 △미국의 정찰기 RC-135기 격추 △일방적인 6자회담 중단 선언 뒤 12시간 내에 미사일 발사실험 등의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온갖 설 난무=김형직군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났다면 단순사고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정보소식통들은 폭발지점 인근에 북한 병기연구소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군수공장이나 무기고가 폭발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폭발 당시 화약류에 의한 지진 징후가 2차례 관측됐다는 점에서 1차 폭발에 이어 2차 폭발이 일어났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한 정보소식통은 폭발지점 인근에서 최근 대포동 미사일을 운반하는 트레일러가 발견됐다는 정보를 밝혀 이번 폭발이 미사일 관련 사고일 가능성도 제시했다. 또 낙후된 철도 때문에 용천 사고와 비슷한 형태로 일어난 사고일 가능성도 제기됐다.

한편 정부의 한 관계자는 “사고설이 나도는 9일은 리창춘(李長春) 정치국 상무위원을 단장으로 한 중국의 당정 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하기 하루 전날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사고에 또 다른 정치적 배경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사태파악에 분주한 주변국=이번 폭발사고의 성격 및 배경을 두고 한미일 3국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이 부랴부랴 사태파악에 나섰다. 특히 미국의 경우 대선을 앞두고 북한이 핵실험 등 돌발행동을 할 것이라는 설이 파다하게 퍼져 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이번 폭발사고의 파장이 엉뚱한 곳으로 번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물론 이번에는 핵실험을 한 것이 아니라 해도 북한이 앞으로 핵실험 의사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동북아시아의 세력균형이 깨질 개연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정부는 특히 이 경우 일본을 비롯한 관련국들이 핵무장에 나서는 등 군비경쟁에 노골적으로 나설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폭발사고 김형직郡은…“김일성 아버지 항일운동 장소” 88년 改名 ▼

북한 양강도 북서부의 김형직군은 면적 1472.6km²에 인구 3만4000여명으로 인구밀도가 낮은 산간지역.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 지린(吉林)성 린장(臨江)현과 마주하고 있다.

본래 지명은 후창군이었으나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이 1920년대 초반 이곳에서 항일저항운동을 했다며 북한 당국이 1988년 지명을 김형직군으로 바꿨다.

2000년 초에는 이번 폭발이 있었던 월탄리와 인접한 영저리에 노동1호 미사일 20여기가 배치되고 대포동 1, 2호 미사일 발사기지가 건설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제적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본보는 2002년 이 같은 사실을 보도한 적이 있다.

군 정보기관에 따르면 김형직군의 미사일 기지에는 1999년 말 미사일연대가 비밀리에 배치됐다. 또 이 연대가 보유한 미사일의 사거리에는 일본열도와 오키나와 미군기지가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지가 이곳에 건설된 이유는 산악지대여서 외부의 공습이 힘들 뿐 아니라 발사대가 중국 쪽 산자락에 위치해 미국이 공습하려 해도 중국 상공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

2001년 탈북한 북한군 고위장교(54)는 “김형직군의 인접군인 자강도 중강군의 오가산 지하에 북한 인민군 최고사령부 비상 지휘소가 건설됐으며 1개 경비연대가 상시 주둔 중”이라고 전했다. 중강군은 6·25전쟁 당시 후퇴한 김일성이 몸을 피했던 곳으로 오가산은 영저리 미사일 기지와 불과 수km 떨어져 있다.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월탄리엔 자강도를 거쳐 온 열차가 양강도에선 처음으로 정차하는 역이 있으며 주변 군사기지에 조달되는 장비들이 이곳에서 내려지고 있다.

한편 일본 산케이신문은 12일 한국 정보당국이 확보했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문건을 인용해 김형직군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삼지연군 무두봉에도 ‘지하기지’를 건설 중이라고 전했다. 이 신문은 김 위원장이 “삼지연군 건설을 계속하느니 무두봉 지하건설에 역량을 집중해 빨리 끝내는 것이 효과적”이라며 “어려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내가 무두봉 건설을 늘 강조하는 것은 거기에 국가의 중요한 제3의 보루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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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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