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가 11일 코리아리서치센터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나타난 민심은 정부 여당에 대해 사회적 갈등을 촉발하는 이른바 개혁 과제 대신 민생 챙기기에 주력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 대신 개정해야”=국보법 개정 찬성론(57.2%)이 국보법 폐지의견(36.9%)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난 것은 이 문제에 대해 정부 여당 입장보다 한나라당의 해법에 공감하는 여론이 우세함을 보여준다.
열린우리당은 이미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발언 이후 국보법 폐지를 당론으로 결정한 상태이며 한나라당은 국보법 개정을 공식당론으로 정해 개정안까지 마련 중이다.
연령별로는 20, 30대에서 폐지론이 개정론보다 오차 범위 내에서 약간 많았으나, 40대 이상에서는 개정론이 압도적이었다. 이 같은 결과는 폐지론에 압도적 찬성 입장을 보이고 있는 열린우리당 내의 386세대(40대 초반) 및 긴급조치 세대(40대 중후반)의원들과 일반 국민들 중 40대 사이에 상당한 시각차가 있음을 보여준다.
지역별로는 호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개정론이 우세했으며, 직업별로는 화이트칼라와 학생층을 제외한 전 직업군에서 개정론이 많았다.
▽“과거사 진상 규명은 부작용 많아”=노 대통령의 올 8·15 경축사 발언으로 촉발된 여권 주도의 과거사 진상 규명에 대해선 순수성보다는 규명 작업에 따른 사회 혼란을 우려하는 시각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40대 이상의 전 연령층에서 과거사 진상 규명이 ‘반민족 친일행위와 국가권력이 저지른 인권 침해에 대한 진상 규명’이라는 의견보다 ‘과거사 진상 규명이라는 미명 아래 국정 현안은 외면한 채 이념 갈등을 재연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우세했다. 20, 30대에서도 오차 범위 내에서 이념갈등의 재연이라는 해석이 더 많았다. 또 호남을 제외한 전 지역이, 화이트칼라 및 학생을 제외한 전 직업군에서 과거사 진상 규명에 따른 이념 갈등 재연을 우려하는 견해가 많았다.
▽“수도 이전은 우선 과제 아니다”=수도 이전과 관련해서는 지역별로 입장이 크게 갈렸다.
수도 이전 예정지(공주-연기)를 포함한 충청권은 수도 이전을 지지하는 의견이 56.9%인 반면 반대의견은 38.9%였다. 인접 지역인 호남에선 찬반양론이 47.0%로 똑같았다. 하지만 서울 인천 등 다른 지역은 수도 이전 반대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서울의 경우는 80.1%로 반대의견이 가장 높았으며 예상 밖으로 강원·제주(78.3%)가 두 번째로 반대 비율이 높았다.
이와 함께 최근 교육인적자원부가 내신 비중 확대, 수능 비중 축소 등을 골자로 발표한 대입제도 개선안에 대해서는 ‘부정적 문제점이 더 클 것’(58.6%)이라는 의견이 ‘긍정적 효과가 더 클 것’(22.5%)이라는 의견보다 많아 정부 교육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깊은 불신을 엿보게 한다.
특히 직업별로는 학생들의 부정적 견해가 다른 직업군보다 최고 20%포인트 이상 높은 것으로 조사돼, 교육 실수요층의 교육 정책에 대한 반감이 더 높았다.
또 학력이 높을수록 대입제도 개선안에 대해 부정적 의견이 많았다. 대재 이상은 65.1%, 고졸 57.3%, 중졸 이하 44.3%가 ‘부정적 문제점이 더 클 것’이라고 답했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
▼경제상황▼
본보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10명 중 9명은 현재 경제상황이 1997년 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IMF) 때와 비슷하거나 더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57.5%가 ‘IMF 때보다 더 어렵다’, 34.0%가 ‘그때와 비슷하게 어렵다’고 응답한 반면 ‘IMF 때보다 좋아졌다’는 응답은 7.5%에 불과했다.
또 개인적인 경제상황에 대해서도 73.7%가 ‘좋지 않다’고 응답한 반면 ‘좋은 편’은 23.3%에 그쳤다.
어려운 경제사정을 반영하듯 국민의 절반 이상은 경제정책이 ‘분배 우선’ 보다는 ‘성장 우선’으로 가기를 희망했다. 전체 응답자 중 57.3%가 경제정책 방향에 대해 “분배도 중요하지만 성장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답변했고, ‘분배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답변한 응답자는 34.6%에 그쳤다.
연령대별로는 나이가 많을수록 성장을 선호했다. 성장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20대에서는 49.3%, 30대 49.0%로 해당 연령층에서 분배 우선을 꼽은 47.9%, 45.0%와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40대와 50대에서는 각각 64.6%와 64.7%가 ‘성장 우선’이라고 답해 분배 우선이라고 답한 29.0%, 20.2%보다 많았다.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사회불안▼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편가름이나 갈등이 심각한 부분으로 ‘빈부갈등(36.6%)’과 ‘보수와 진보의 이념갈등(27.4%)’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는 지난해 8월 11일 본보 여론조사와 비교해 볼 때 이념갈등이 상대적으로 크게 부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해 조사에서 이념갈등을 가장 심각한 갈등으로 꼽은 응답자는 14.8%였다. 이념갈등에 대한 우려가 1년 만에 12.6%포인트가 늘어난 것은 최근 여권이 추진하고 있는 국가보안법 폐지와 과거사 진상규명 등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빈부갈등은 지난해(37.9%)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 밖에 노사갈등이라는 응답은 12.2%였고, 지역갈등과 세대갈등을 꼽은 응답은 각각 10.4%, 8.9%였다.
사회갈등의 책임 소재와 관련해서는 전체 응답자의 52.4%가 ‘정치인과 정당’에 책임이 있다고 답변했다. 특히 ‘대통령과 청와대’라고 답한 응답자는 15.5%로 지난해 8월 조사 때의 5.7%보다 10%포인트 가까이 늘어났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증가한 것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정당 지지율▼
이번 조사에서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은 20%대 중반으로 하락한 반면, 한나라당은 30%대 초반을 유지했다.
열린우리당은 4·15총선 이후 40%대 초반의 지지율을 유지하다 7월 초부터 한나라당에 역전당하며 31.2%(7월 7일)→26.9%(8월 31일)→24.8%(9월 11일 본보 조사)로 완만한 낙폭을 그렸다.
김선일씨 피살 사건 등 대형 악재와 당-청 갈등에 이어 지난달 신기남(辛基南) 전 의장 부친의 일제강점기 헌병 복무 사실을 둘러싼 거짓말 파동 등이 겹친 결과로 분석된다. 지역 별로는 호남 충청(오차범위 내)에서만 열린우리당이 우세했고 전 지역에서 한나라당에 뒤졌다.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31.8%(7월 7일)→33.0%(8월 31일)→33.6%(9월 11일)로 별다른 진폭이 없었다. 이는 여권의 악재에 따른 반사 이익과 박근혜(朴槿惠) 대표 개인의 인기에 힘입은 것으로 분석된다.
박 대표의 지지도는 53.9%로 이전과 별 차이가 없었다. 단 4월 1일 실시된 여론조사에 비해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15.8%에서 33.1%로 2배 이상 늘어나고, 관망층이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행보에 따라 박 대표의 지지도가 요동칠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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