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인이 무서워”… 관가 ‘100만원 촌지’ 후폭풍

  • 입력 2004년 9월 15일 18시 29분


현금 100만원에 사표를 제출하게 된 김주수(金周秀) 전 농림부 차관의 ‘후(後)폭풍’에 관가가 꽁꽁 얼어붙고 있다.

우선 서울 세종로와 경기 과천 관가주변의 고급음식점에는 공무원 손님들의 발길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김 전 차관이 고교 선배에게서 골프공 세트와 함께 100만원을 받은 사실이 적발돼 옷을 벗게 된 사실이 알려진 15일 정부과천청사 안내동은 평소와 같이 민원인들이 북적댔으나 분위기는 다소 썰렁했다.

외부인에게 출입방문증을 끊어주는 부처별 데스크에서는 평소보다 더 꼼꼼하게 민원인들의 신원을 확인했으며 만나고자 하는 공무원에게 직접 확인한 뒤 출입을 허가해 주는 모습이었다.

민원인과 사전 약속이 돼 있던 사회부처의 한 공무원은 “먼 친척뻘이다. 원래 사무실로 찾아오라고 했는데 혹시 선물세트라도 들고 올까봐 직접 안내동으로 나왔다. 선물세트에 돈 봉투나 상품권이라도 들어있으면 그냥 모가지가 아니냐”고 손으로 목을 치는 시늉까지 했다.

최근 한 과장급 간부가 민원인에게서 20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사무실에서 받다 현장에서 적발된 적이 있는 보건복지부는 이번 사건에 더욱 민감해하는 모습이다.

복지부의 한 서기관은 “민원인 상대가 잦은 부서에서는 민원인 또는 단체에 전화를 걸어 ‘추석 전까지 사무실로 절대 찾아오지 말 것과 어떤 선물도 보내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한 과장급 공무원이 몇 년 전 업자들에게서 수천만원의 돈을 받았다는 진정서가 접수돼 최근 사표를 낸 바 있는 건설교통부의 공무원들도 바짝 움츠리는 모습이다. 건교부의 한 공무원은 “‘고작 100만원을 받았다고 차관이 그만둬야 하느냐’고 푸념하는 직원들도 없지는 않지만 분위기가 워낙 뒤숭숭해 입을 다무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농림부는 아예 초상집 분위기다. 한 국장은 “민원인이 찾아오더라도 가능하면 전화 통화로 끝내고 대면 접촉은 자제하고 있다”고 했고, 다른 국장은 “할 말이 없다”며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각 부처는 이 사건을 계기로 자체 공직기강 점검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강동석(姜東錫) 건교부 장관은 “민원인에게서 단돈 1만원이라도 받은 공무원은 공직을 떠나야 할 것이다”며 몸조심을 당부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일선 지방노동사무소의 근로감독과와 산업안전과 등 민원인 접촉부서에는 감사팀이 직접 나가 감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차지완기자 cha@donga.com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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