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過만큼 功을 밝혀내려고 할까
3월 국회를 통과한 기존법은 ‘조사대상자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에 가담했거나 지원한 사실이 있을 때에는 이러한 사실을 함께 조사해야 하고 위원회는 그 조사내용을 조사보고서 및 사료에 기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개정안은 이를 삭제했다.
그래 놓고 구제조항을 신설해 더욱 이상하다. 구색 맞추기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친일행위 증거자료 제출에 대해서는 보상이나 지원 규정까지 두면서 반일행위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않고 있는 것도 구제조항의 의도를 의심케 한다.
○애매하고 불공평한 구제 요건
구제 요건도 애매하고 불공평하다. 또한 까다롭다. 우선 ‘반일 행적이 뚜렷한 경우 등 명백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부터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분명치 않다. 친일 행위에 대한 심의나 판정은 이처럼 ‘뚜렷하거나 명백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 않아 형평성 문제도 있다.
판정에 필요한 의결정족수를 비교해 보면 그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반일 행적을 인정받아 친일행위자 선정에서 제외되려면 진상규명위원회 재적위원 전원이 찬성해야 하나, 친일행위자 선정은 3분의 2 이상의 찬성만 얻도록 한 까닭을 납득할 수 없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공적 조사
이미 언급했듯이 진상규명위원회가 제한된 인력으로 제한된 기간에 최소 수천명에서 최대 수십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의 60년 이상 묵은 행적을 파헤치는 것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과오 못지않게 공적 확인까지 기대하는 게 애당초 무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구제조항을 둔 것과 관련해, 실체적인 이유가 아닌 다른 이유 때문에 구제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법적으로 길을 터 놓은 게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대통령의 위원회 구성 권한을 한층 강화한 것도 이 같은 의문의 한 요인이 되고 있다.
○유족이나 후손이 나서야 하는데
친일행위자로 선정된 당사자 또는 그 유족이나 자손이 불명예를 벗으려면 결국 개인적으로 반일 행적의 증거 자료를 찾아 진상규명위원회에 제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래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행적을 찾아 증거 자료를 발굴하려면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갈 것이므로 그만한 여력을 가진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여력이 있다 해도 국가예산과 정부조직의 도움을 받고 강제력까지 가진 위원회의 조사결과를 뒤엎는 것은 무척 힘들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조사대상자 중에는 유족이나 자손이 없는 사람도 적지 않을 텐데, 그들은 오직 위원회의 처분에 맡겨져 있는 셈이다.
○그것은 진실도 정의도 아니다
개정안 제1조는 역사의 진실과 민족의 정통성 확인 및 사회정의 구현을 법의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조사대상자들의 과오와 공적을 함께 밝혀낸 뒤 그 경중을 따져 역사적 책임을 지우는 게 법안의 취지에 맞다.
즉, 역사에 명(明)과 암(暗)이 있듯이 개인사도 공(功)과 과(過)가 교차하기 마련인데 한쪽 면만 부각하는 것은 공정한 평가라 할 수 없다. 90개의 과오가 10개의 공적에 가려져서도 안 되지만, 90개의 공적이 10개의 과오에 묻혀서도 안 된다. 그것은 역사의 진실도 아니고 사회정의도 아니다.
○‘법률로 쓰는 역사’의 본질적 한계
서울중앙지법의 한 중견 판사는 “친일진상규명의 중대성을 감안하면 친일행위자 선정과 제외의 기준을 다르게 정한 것은 절차적 정의에 어긋나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 역시 “형량을 정할 때도 피고인의 정상을 참작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공적 조사를 외면하다시피 한 개정안은 기본을 무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안이 안고 있는 이 같은 문제점에 대해 학자들은 ‘법률로 역사를 쓰려는 시도’의 본질적인 한계라고 지적해 왔다. 역사에 대한 평가를 법으로 규율하려는 것에 대해서는 법조계나 학계나 모두 부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 중 과오 및 공적조사 관련조항 비교 | ||
과오조사 관련조항 | 공적조사 관련조항 | |
목적 | 일제에 협력한 행위 조사, 친일반민족행위자 선정, 역사의 진실 확인 | 별도 규정 없음 |
대상 | 친일행위자 유형 22가지 열거 | 친일행위자 중 반일행적이 뚜렷한 경우 등 명백한 사유가 있는 사람 |
조사기구 | 진상규명위원회, 심사위원회, 자문위원회, 사무처 등 | 별도 규정 없음 |
조사방법 또는 이의신청 | 관계인의 진술서 및 출석 요구, 출석거부 시 동행명령장 발부, 관련자료 요구, 관련기관에 대한 조사, 관련기관의 편의제공 의무 등 | 친일행위 혐의자로 통지받은 후 60일 이내에 서면으로 이의신청, 위원회는 이의신청 후 60일 이내에 조치사항을 서면 통지 |
제보 및 보상 | 일반인의 진상조사 신청 및 접수 방법 상세 명기, 재외공관에도 접수처 설치, 제보자에 대한 불이익 금지 및 보상 | 별도 규정 없음 |
의결 요건 | 심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진상규명위원회 재적위원(9명) 3분의 2 이상 찬성 | 진상규명위원회 재적위원 전원 찬성 |
의결 결과 |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조사보고서 작성, 공표 | 친일행위자에서 제외 |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
조수진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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