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여야가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처리시한을 늦춘 데는 비록 합의했지만 출자총액제한제도와 계좌추적권 등 핵심 쟁점을 둘러싼 견해차는 좁히지 못하고 있어 합의 과정에서 진통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야 합의 내용과 배경=17일 새벽까지 대치상태를 보였던 여야가 합의점을 찾기 시작한 것은 이날 아침이었다.
문학진(文學振) 열린우리당 간사와 권영세(權寧世) 한나라당 간사는 양당 대치 속에서도 물밑접촉을 통해 국정감사 이후 공청회를 연 뒤 여야간 타협이 되지 않을 경우 표결 처리하자는 데 합의를 했다.
그러나 합의안을 들고 천정배(千正培)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를 찾아간 문 의원은 ‘9월 23일까지는 상임위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천 대표의 주문으로 재가를 받아내지 못했다.
협상이 결렬되자 기류가 다시 얼어붙고 한나라당 의원들의 정무위원장석 점거 상태는 이날 오후 6시까지 계속 이어졌다. 이후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을 ‘친재벌당’으로,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을 ‘반경제당’이라고 서로 격렬히 비난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오후 4시경 다시 회의장에 속속 입장해 한때 강행처리하는 게 아니냐는 기류가 감돌았다. 하지만 한나라당 유승민(劉承旼), 김정훈(金正薰), 나경원(羅卿瑗) 의원 등이 정무위원장석을 점거하는 바람에 회의는 열리지 못했다.
의사봉을 잡아야 하는 김희선(金希宣) 정무위원장은 이날 부친의 행적 등 가족사를 해명하는 기자회견을 여느라 회의장에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또 열린우리당 의원들도 강행처리할 경우 역풍을 우려해 실력행사에 나서지는 않아 여야 정면충돌 사태는 피했다.
물밑접촉에 나섰던 열린우리당 이종걸(李鍾杰) 원내수석부대표와 한나라당 남경필(南景弼) 원내수석부대표가 진통 끝에 오후 6시경 11월 12일 처리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냈다.
열린우리당 지도부에선 “그리 급한 사안도 아닌데 너무 밀어붙일 경우 소수당인 한나라당을 동정하는 반대여론이 생길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는 후문이다.
여야 합의를 이끌어내자 천 대표와 홍재형(洪在馨) 정책위원장 등 당 지도부는 정무위원장실을 찾아 소속 의원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일정은 조정, 내용에는 이견=여야간 일정 합의는 이뤘지만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은 첩첩산중이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한 여야의 입장차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공청회 과정에서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대기업 정책에 대해 대대적인 손질을 가할 참이고, 열린우리당은 개혁의 선명성을 내세워 내용 수정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한나라당은 국정감사 과정에서 대기업 정책의 문제점을 파헤친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어 여야간 전투는 국감장으로 넘어갈 전망이다.
유승민 한나라당 제3정조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출자총액제한제도는 폐지해야 하고 계좌추적권 부활에도 반대한다”면서 “대기업집단 소속 금융보험사의 계열사 의결권 제한조치는 그대로 두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번 합의로 열린우리당은 ‘여야 합의가 안 되면 표결로 처리한다’는 원칙을 확인했고, 한나라당으로선 ‘강행처리를 막았다’는 점에서 서로가 명분은 얻게 됐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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