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 논란]열린우리 “한나라 입장 지켜본후에…”

  • 입력 2004년 9월 20일 18시 43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국가보안법 폐지 발언 이후 교착상태에 빠졌던 국가보안법 개폐논의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입장 선회로 일단 새로 물꼬를 트게 됐다.

그러나 협상이 본궤도에 오르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을 듯하다. 박 대표가 던진 국면 전환 카드가 여야 내부에서 각각 의견 조율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박 대표는 국면전환 카드를 먼저 던짐으로써 협상의 주도권을 쥐게 된 셈이다. 당내에선 “협상 카드를 먼저 보여준 것은 실책이 아니냐”는 반론도 없지 않지만 박 대표측은 여권의 대응 카드를 사전에 무력화시킴으로써 여권이 주도하려는 ‘개혁 이슈’를 희석시키겠다는 복안이다.

물론 당내 보수 성향 의원들의 반발은 박 대표가 넘어야 할 산이다. 강경 보수파인 김용갑(金容甲) 의원은 20일 “박 대표의 발언으로 국보법 폐지 반대의 명분이 없어졌다”고 흥분했다.

그러나 박 대표는 이날 상임운영위원회 비공개회의에서 국보법 2조의 정부 참칭 조항 삭제에 반대하는 일부 당직자들을 겨냥해 “나도 법적으로 충분히 검토했다”며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당내의 대세도 일단은 박 대표의 입장선회를 지지하는 분위기여서 최종적으로는 박 대표의 입장을 지지하는 쪽으로 정리될 듯하다.

여기엔 당의 이념적 좌표를 ‘중간지대’로 옮기려는 박 대표 나름의 전략도 작용했다. 실제 박 대표는 이념적 갈등이 첨예한 국보법 이슈를 정면돌파함으로써 당의 이념지표를 ‘중도 보수’ 쪽으로 옮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열린우리당은 박 대표의 발언을 환영하면서도 협상 자체에 대해선 여전히 신중한 반응이다. 박 대표 발언의 진의(眞意)가 파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박 대표의 발언을 계기로 여야 협상 분위기가 진전될 경우 당의 ‘목소리’를 되찾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협상을 통해 노 대통령의 국보법 폐지 발언 이후 ‘거수기당’이란 혹독한 비판을 받는 과정에서 실추된 당의 이미지를 회복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당 국보법 태스크포스(TF)팀 소속 김종률(金鍾律) 의원은 “박 대표의 발언은 국보법 관련 논의를 상당히 활성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상당히 고무적이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은 박 대표가 먼저 국보법 2조와 명칭 개정 가능성을 거론한 만큼 향후 협상을 통해 최대한 한나라당을 압박한다는 전략이다. 사실상 국보법을 폐지하는 실익을 거둘 수 있을 정도로 당의 입장을 관철시키겠다는 것.

이에 따라 일단 협상의 ‘D데이’는 박 대표의 발언에 대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내부 전열이 정비된 이후인 추석 연휴 이후가 될 공산이 크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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