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협상이 본궤도에 오르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을 듯하다. 박 대표가 던진 국면 전환 카드가 여야 내부에서 각각 의견 조율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박 대표는 국면전환 카드를 먼저 던짐으로써 협상의 주도권을 쥐게 된 셈이다. 당내에선 “협상 카드를 먼저 보여준 것은 실책이 아니냐”는 반론도 없지 않지만 박 대표측은 여권의 대응 카드를 사전에 무력화시킴으로써 여권이 주도하려는 ‘개혁 이슈’를 희석시키겠다는 복안이다.
물론 당내 보수 성향 의원들의 반발은 박 대표가 넘어야 할 산이다. 강경 보수파인 김용갑(金容甲) 의원은 20일 “박 대표의 발언으로 국보법 폐지 반대의 명분이 없어졌다”고 흥분했다.
그러나 박 대표는 이날 상임운영위원회 비공개회의에서 국보법 2조의 정부 참칭 조항 삭제에 반대하는 일부 당직자들을 겨냥해 “나도 법적으로 충분히 검토했다”며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당내의 대세도 일단은 박 대표의 입장선회를 지지하는 분위기여서 최종적으로는 박 대표의 입장을 지지하는 쪽으로 정리될 듯하다.
여기엔 당의 이념적 좌표를 ‘중간지대’로 옮기려는 박 대표 나름의 전략도 작용했다. 실제 박 대표는 이념적 갈등이 첨예한 국보법 이슈를 정면돌파함으로써 당의 이념지표를 ‘중도 보수’ 쪽으로 옮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열린우리당은 박 대표의 발언을 환영하면서도 협상 자체에 대해선 여전히 신중한 반응이다. 박 대표 발언의 진의(眞意)가 파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박 대표의 발언을 계기로 여야 협상 분위기가 진전될 경우 당의 ‘목소리’를 되찾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협상을 통해 노 대통령의 국보법 폐지 발언 이후 ‘거수기당’이란 혹독한 비판을 받는 과정에서 실추된 당의 이미지를 회복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당 국보법 태스크포스(TF)팀 소속 김종률(金鍾律) 의원은 “박 대표의 발언은 국보법 관련 논의를 상당히 활성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상당히 고무적이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은 박 대표가 먼저 국보법 2조와 명칭 개정 가능성을 거론한 만큼 향후 협상을 통해 최대한 한나라당을 압박한다는 전략이다. 사실상 국보법을 폐지하는 실익을 거둘 수 있을 정도로 당의 입장을 관철시키겠다는 것.
이에 따라 일단 협상의 ‘D데이’는 박 대표의 발언에 대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내부 전열이 정비된 이후인 추석 연휴 이후가 될 공산이 크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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