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들은 의총장에서 당 정책위가 모 대학교에 연구용역을 의뢰해 만든 대안을 받아 본 뒤 “뭘 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술렁댔다. 일부 의원들은 “이런 대안으로 오늘 당론을 결정하기는 글렀다”며 의총이 시작한 지 1시간도 안돼 의총장을 빠져나갔다.
일부 부처의 충청권 이전 대안의 경우 수도권과 충청권 양쪽을 다 만족시키려는 발상이었으나, 어느 쪽의 지지도 끌어내지 못할 것이라는 게 다수 의원들의 견해였다.
의총 첫 발언자로 나선 이군현(李君賢) 의원은 “이전 부처의 선정 기준이 모호한 점 등 문제가 많다”며 “원칙적으로 수도 이전은 안 된다는 원칙을 정한 뒤 대안을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재원(金在原) 의원도 “행정기관의 분산 배치는 기회주의적으로 비칠 수 있다”며 우려했고, 한선교(韓善敎) 의원은 “대안이 아니라 어정쩡한 ‘비빔밥’이 됐다”고 비판했다.
당 내 유일한 충청권 의원인 홍문표(洪文杓) 의원은 “이런 태도는 충청권에 대한 확인 사살”이라고 반발했다.
비주류측은 당 지도부가 수도 이전을 정략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계동(朴啓東) 의원은 의총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정부가 수도 이전 정책을 정략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당이 내놓은 대안 역시 정략적”이라고 말했다.
또 당 지도부가 의원들의 의견을 확인하는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고 당론 확정과 대안 제시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당 수도이전문제특위 위원인 박진(朴振) 의원은 “내가 특위 위원이지만 대안의 내용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당 정책위의 일방통행식 정책결정 과정을 질타했다.
맹형규(孟亨奎) 전재희(全在姬) 의원 등도 “대안의 내용이 워낙 논란의 여지가 많고, 대안 실현을 위한 비용 문제도 좀 더 세심히 따져봐야 한다”며 제동을 걸었다.
원희룡(元喜龍) 최고위원은 이날 의총 시작 전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대안을 발표하려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당론결정이 무산되자 당 일각에선 ‘수도 이전 반대 당론 확정 및 대안 발표’라는 계획을 성급하게 추진하다 당의 이미지를 훼손시킨 데 대한 이한구(李漢九) 정책위의장의 책임론도 거론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날 의총에서 국가보안법 개정 방향에 대해서도 당론을 모으려고 했으나, 수도 이전에 대한 토론이 길어져 국보법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보수성향의 영남권 의원들은 “국보법 2조(반국가단체의 정의)의 ‘정부 참칭’ 항목 삭제는 헌법을 무시한 발상”이라고 비판해 논란의 불씨는 꺼지지 않을 전망이다.
또 일부 의원들은 대안 제시와는 별도로 수도 이전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 실시를 당론으로 정하고 정부 여당 측에 국민투표 실시를 강하게 요구할 것을 제안했다.
박진 박계동 심재철(沈在哲) 의원 등은 “수도 이전은 국가의 미래를 결정지을 수 있는 중대사이므로 반드시 국민 개개인의 의견을 물어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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