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아시아정책硏 “美, 한국 불신땐 독자공격”

  • 입력 2004년 9월 23일 18시 47분


《북한판 ‘10월 충격설(October Surprise)’과 노동미사일 발사 준비설 등 한반도 위기설이 다시 확산되고 있다. 니컬러스 에버스타트 미 기업연구소(AEI) 선임연구원(사진)은 미국 아시아정책연구소(NBR)의 특별 연구과제인 ‘2004∼2005년 동북아시아’ 연례보고서를 통해 앞으로 전개될 수도 있는 6가지의 ‘한반도 가상 시나리오’를 분석했다. 미 행정부의 분석은 아니지만 필자는 예측 불가능한 한반도 정세를 분석하는 데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역설했다. 본보가 단독으로 입수한 보고서 전문에 따르면 한반도 시나리오는 크게 6가지. △불안한 균형 △핵 협상 타결 △한미 핵 갈등 △북한의 전격적 핵 실험 발사 △북한 내부 붕괴 △군사적 충돌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군사적 충돌’. 에버스타트 선임연구원은 50여쪽에 이르는 보고서에서 미국의 선제공격과 북한의 자작극이라는 두 가지 가상 시나리오를 소개했다.

▽미국의 선제공격

북한이 남포항에 정박 중인 정체불명의 선박에 핵 장비(plutonium core of the devise)를 선적한다. 이 움직임은 즉각 미국에 포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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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에서는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에 이 사실을 통보해 주느냐 여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진다. 논쟁은 결국 일방주의자(unilateralist)들의 승리로 끝나고, 미국은 선제공격 준비에 돌입한다. 한국에는 이를 알리지 않는다. 한국의 외교안보팀이 (친북세력 또는 북한에) 정보를 흘리거나, 미국의 강경 대응에 반대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남포항 공격 몇 분 전. 백악관은 한국 대통령과 일본 총리에게 전화 통보를 한다.

남포항과 정체불명의 선박은 파괴되고, 북한은 즉각 보복 공격에 돌입한다. 휴전선 일대에서 서울을 사정권으로 하는 수천 문의 장사정포가 일제히 불을 뿜는다. 뿐만 아니다. 북한은 한국과 일본 내 미군 기지에 미사일 공격을 가한다. 전쟁이 발발해 엄청난 사상자가 생긴다.

전쟁은 북한의 패배로 끝나고, 북한 전역에 한국군이 주둔한다. 북한의 모든 핵무기 프로그램은 제거된다.

에버스타트 선임연구원은 이 같은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경우 즉, 미국이 한국과 일본의 동의 없이 선제공격을 강행한다면 한미일 동맹이 끝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이 시나리오는 선제공격이 고려 대상이 아니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피해와 파장을 다시 한번 강조하기 위해서 상정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의 자작극

또 다른 시나리오는 북한이 마치 미국의 선제공격을 받은 것처럼 꾸민 뒤 한국과 일본 내 미군 기지에 미사일 공격을 감행한다는 북한의 선제공격론이다. 미국의 동맹국들을 분열시키고, 미국을 난처한 상황에 빠뜨리기 위해서다.

8월 말 무더운 어느 날 밤, 북한 영변 핵 시설에 엄청난 폭발이 발생한다. 북한 방송들은 즉각 영변이 미 제국주의자의 공격을 받았다고 선포한다. 북한은 서울 한복판에 있는 미 8군기지를 포격한다. 유엔군 사령부 및 한미연합사령부는 일대 혼란에 휩싸인다.

영변 폭발 직후 15분이 채 지나지 않아 북한 지도자의 성명이 발표된다. ‘북한은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을 받고 적군의 본부를 보복 공격했다’는 내용이다.

한국은 일대 공포 분위기에 휩싸인다. 한국 언론을 중심으로 ‘영변 폭발은 미국이 북한 정권 교체를 위해 시도한 선제공격의 첫 단계’라는 루머가 확산된다.

한미연합사는 그 사이 영변 폭발이 북한의 치밀한 계획에 의해 꾸며진 자작극이라는 정황을 확보한다. 또 북한이 전면전을 선포했지만,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용산의 미 8군기지만을 겨냥한 것으로 판명된다. 국제여론도 북한의 자작극임을 인정하기 시작하고, 중국 러시아 등 각국의 대북 비난성명이 이어진다.

미국은 전면전을 피하기 위해 북한에 대한 보복조치를 포기한다.

에버스타트 선임연구원은 “이 경우 미군 주둔이 오히려 ‘위험’이 될 수도 있다는 인식이 동맹국들 사이에 퍼질 뿐 아니라 미국과 동맹국들의 관계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北내부붕괴 된다면…▼

니컬러스 에버스타트 선임연구원은 북한 내부 붕괴 및 중국군 개입의 시나리오도 상정했다.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급사하면서 북한은 김정일 추종세력과 반대세력간의 군사적 충돌, 즉 내전에 빠진다.

주변국들은 상황을 예의 주시하되 부작용을 우려해 일체의 개입을 삼간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과 주변국들에는 알리지 않고 압록강 주변에 대규모 병력을 긴급 배치한다. 이 와중에 자강도의 북한 인민군과 중국군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고, 상당한 인명 피해가 발생한다.

중국은 이 사건을 빌미로 북한에 전격 진입한다. 중국 정부는 북한 내 중국 인민을 보호하고 변경의 안정을 확립한다는 명분으로 진입이 불가피하다고 발표한다. 동시에 내전을 벌이고 있는 북한의 양 세력에 ‘중국의 평화 확립 노력에 공격을 가할 경우 엄청난 반격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북한은 혼란과 무질서에 휩싸인다.

한국 미국 일본의 지도자들은 비상회의를 소집해 북한의 핵 위협 등 상황이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는 상태까지 왔다는 데 의견을 모은다.

미 공군이 출격하고 한국군도 평양으로 진격한다. 북한은 서울과 일본의 미군 기지에 보복공격을 가한다.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한다.

한 달쯤 후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중국이 5분의 1을 차지한다. 그 밖의 북한 영토는 ‘무주공산(無主空山)’. 한미 정보당국은 북한이 많게는 12개의 핵 장비와 6개 정도의 비밀 핵 시설을 확보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김 위원장의 가족들과 측근들은 중국으로 도주하고, 북한은 한국의 영토로 간주된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에 아직 정부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러시아는 이 문제를 유엔에 넘길 것을 요구한다.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에버스타트 연구원은…▼

니컬러스 에버스타트 미 기업연구소(AEI) 선임연구원이 작성한 ‘한반도 시나리오’는 아시아정책연구소의 특별 연구과제인 ‘2004∼2005년 동북아시아’ 연례보고서의 한 부분. 연례보고서 작성에는 에버스타트 선임연구원과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 등 8명이 참여했다.

에버스타트 선임연구원은 딕 체니 미 부통령과 친분이 두터운 인물. 그는 1980년대 하버드대에서 정치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직후 북한 인구통계를 분석해 ‘숨어 있는 100만명’을 찾아낸 뒤 이 숫자가 북한 군사력 규모임을 최초로 밝혀낸 인물이기도 하다.

미국 아시아정책연구소(NBR·소장 리처드 엘링스)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전략적 환경을 연구하는 싱크탱크로 미행정부의 신뢰를 받고 있다. 미 행정부 내 한반도 담당자들이 ‘최고’ 중 하나로 꼽는 연구소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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