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화나트륨은 도금, 살충제 제조 등 공업용으로 널리 쓰이지만 ‘타분가스’라는 화학무기의 원료로도 사용된다. 타분은 맹독성 살상무기인 ‘사린가스’보다는 독성이 약하지만 인체에 치명적인 해를 입히는 화학무기.
이 때문에 한국을 비롯한 각국은 북한 등 ‘요주의 국가’로의 반입을 통제하고 있다.
특히 이번에 북한에 반입된 시안화나트륨은 산업자원부의 수출허가도 받지 않고 중국을 거쳐 수출한 것이어서 정부의 수출입관리에 심각한 허점을 드러냈다.
더욱이 정부는 지난해 말 시안화나트륨의 중국 경유 수출 사실을 알고 해당업체를 검찰에 고발해 법원 판결까지 난 사건을 공개하지 않고 숨겨왔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화학무기 원료 북한반입 실태=일반제품의 경우 기업들은 자유롭게 수출입을 할 수 있지만 시안화나트륨과 같은 ‘전략물자’를 수출하기 위해서는 정부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생화학무기의 수출통제체제인 ‘호주그룹’ 가입국들은 각국의 ‘요주의’ 수입업자와 최종사용자 리스트를 공유하고 이들 업체가 수입하거나 사용하는 경우에는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호주그룹 회원국인 한국도 마찬가지.
지금까지 시안화나트륨이 북한으로 반입됐거나 북한으로 수출하려다가 적발된 사례는 모두 3건이다.
국내 W무역업체가 작년 6∼9월 107t의 시안화나트륨을 중국 단둥의 Y사로 수출했으며 Y사가 이를 다시 북한의 B무역상사에 재수출했다. 올 5월에는 국내 C 업체가 태국으로 수출한 시안화나트륨 338.2t 중 71.2t을 태국 D사가 북한에 재수출을 시도했다.
태국으로 수출된 시안화나트륨 중 142.4t은 국내로 환수됐지만 나머지 195.8t은 태국 내수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될 뿐 정확한 이동경로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시안화나트륨은 지난달에도 말레이시아 E사가 한국산 15t을 포함한 40t의 물량을 북한으로 수출한 것으로 알려져 관계당국이 조사를 벌이고 있다.
▽수출입 관리에 구멍=문제는 지금까지 3건의 불법 수출 사례가 적발됐지만 실제로 얼마나 많은 시안화나트륨이 제3국을 경유해서 북한 등 수출통제 국가로 반입됐는지는 미지수라는 점이다.
시안화나트륨은 중국 수출 물량이 지난해 1만t을 넘었고 올해도 5000t에 이르는데 이 중 얼마나 북한 등 제3국으로 재수출됐는지 정확한 파악이 불가능하다.
북한으로 흘러간 시안화나트륨이 공업용이 아닌 화학무기 제조용으로 사용됐는지 여부도 확인이 안 된다.
산자부 관계자는 “수출업체들이 용도란에 ‘공업용’이라고 적어 허가를 신청해오면 별도의 확인절차 없이 허가를 내줄 수밖에 없다”며 “수입업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정확한 용도를 파악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토로했다.
▽북한에 얼마나 더 반입됐는지 파악조차 안돼=지난해 국내 무역업체가 중국을 거쳐 북한으로 시안화나트륨을 수출한 사례는 국내 업체가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제3국을 통해 전략물자를 통제국가로 수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부는 이 업체가 산자부에 자진신고를 한 뒤에야 북한으로의 밀수출 사실을 파악했다.
또 정식으로 허가를 받고 수출된 전략물자라고 해도 외국의 수입업체가 다시 제3국으로 재수출할 경우 이를 추적하기가 거의 어렵다.
▽산자부 은폐 의혹=정부는 시안화나트륨의 중국 경유 북한 수출 사실을 지난해 9월에 알고 검찰에 고발까지 했으면서도 그동안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게다가 최근 태국으로 수출된 시안화나트륨이 북한에 수출됐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제기됐을 때 “북한으로 넘어간 사실이 없다”고 해명하는 기자회견을 열고서도 중국 경유 수출 사실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서영주 산자부 무역유통심의관은 이에 대해 “태국 수출건 당시에는 언론에 났던 의혹에 대해서만 전후 사정을 파악했기 때문에 중국 경유 북한 수출건에 대해서는 자세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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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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