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軍재편 방향과 일본의 반응▼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21일 미국 뉴욕에서 만나 전 세계 미군재편 작업에 대한 양국의 협력을 본격화하기로 합의했다.
미군재편은 9·11테러를 계기로 새롭게 대두된 전략과제에 맞춰 전 세계 미군의 배치, 병력구성, 기지형태 등을 전면 재조정하는 작업이지만 미일동맹의 장래에도 큰 의미를 갖는다.
최근 미 정부 당국자와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면서 일본의 과제를 따져봤다. 이 당국자는 일본 정부가 미군재편 문제에 미온적인 데 대해 섭섭한 감정을 드러냈다.
일본 외무성과 방위청 관계자가 지난달 미국을 방문했을 때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은중국의 ‘안보 도전’을 언급하면서 일본의 의향을 살폈다. 하지만 일본은 답변을 피한 채 “오키나와 미군 헬기 추락 사건에 대해 조만간 정식 항의 문서를 보내겠다”고만 말했다.
미 행정부의 대표적 지일파(知日派)인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일본 관리들에게 “지금 상황은 열차탈선 사고와 비슷하다”며 현재의 미일관계에 대해 경고하면서 미군재편 문제에 대한 전략적 대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데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부시 행정부가 미군재편 구상을 내놓고 동맹국과 협의에 들어갈 뜻을 밝힌 것은 작년 11월. 그 후 일본 정부가 보인 태도에 대해 미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측은 총선이 임박했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총선이 끝난 후에도 회답이 없어 올 4월경 다시 일본측에 협의를 제의하자 참의원의원 선거가 있어서 곤란하다고 했다. 7월에 선거가 끝나 ‘이번엔 되겠지’ 하고 정식으로 제안하자 선거 뒤처리를 해야 하니 기다려 달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확실하게 했으면 좋겠다. 일본은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를 기다리는 것인가. 미 정부 내부의 의견이 다르다고 보는 것인가. 미군재편은 장기 전략이다. 국무부와 국방부가 다른 문제에서는 의견을 달리 해도 이 문제에 관해서는 98% 같은 입장이다.”
미국은 전략 환경 변화에 대응하려면 어떤 억지력, 병력구성, 기지체제를 구축해야 하는지에 대해 동맹국인 일본과 논의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일본은 ‘미군기지 인근 지역의 부담 경감’에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미국의 최대 오산은 ‘맹우(盟友)’인 고이즈미 총리가 이끄는 총리 관저가 돌처럼 강경하고 ‘동지’인 외무성이 얼음처럼 차가웠다는 것이다.
미국의 군사재편 의도는 ‘언제, 어디서든 필요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병력’을 세계 각지에 투입하는 것이다. ‘고정된 위치에서의 전투’에 그치지 않고 ‘유동적인 상황에서의 전투’에 대응한다는 개념이다.
주요 위협대상은 ‘불안정의 호(弧·arc)’로 불리는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동남아시아까지의 이슬람 과격파 테러, 대량살상무기 확산, 그리고 테러리즘의 숙주가 될 수 있는 이른바 ‘파탄난 국가들(failed nations)’이다.
장기적으로는 중국이 국제 파워게임의 중심으로 성장하면 아시아가 직접 영향을 받게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다. 전략 환경 변화에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병력과 기지를 재구성하려 한다. 독일을 중심으로 7만명, 한국에서는 1만2500명을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일본에는 △미 워싱턴주의 육군 제1군단 사령부를 일본으로 이전 △제5공군사령부(도쿄)를 제13공군사령부(괌)로 통합 △오키나와 기지의 이전계획 수정 등을 제안했다.
제1군단(약 2만명)의 주 임무는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발생하는 분쟁에 즉각 대응하는 것으로 6개 신예경장갑전투여단(IBCT) 중 4개가 아시아에 추가 배치된다. ‘새로운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육군의 해병대화(化)’가 진행되는 가운데 ‘불안정의 호’ 지역에 대한 전력을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이 구상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미 정부 내에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본 정부 내에는 육군 1군단 사령부의 일본 이전이 주한미군의 완전철수를 염두에 둔 것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기류도 있다.
공군사령부 통합 제의에 대해 미 정부 고위 관리는 “장기적인 전략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미국의 제안 중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 공군은 이미 언제 어디서든 세계 규모로 운용 가능한 ‘원정 공군’의 색채를 띠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괌의 미 공군이 단기간에 출동해 주둔할 수 있는 전방기지가 일본에 있다면 좋은 일이다. 중국의 잠재적 군사위협을 의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 랜드연구소는 미 공군의 위탁연구 ‘미국과 아시아’(2001년)에서 “단기적으로는 중국의 대만에 대한 군사력 행사,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지역 지배에 대응하기 위해 군사력의 ‘남서(南西) 전환배치’가 필요하다”며 “괌 기지를 아시아 지역 미 군사력의 중추로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 공군은 이 제안에 바탕을 두고 준비작업을 진행해 왔다. 공군사령부의 괌 통합은 북한, 나아가 중국의 미사일 사거리 바깥이라는 점도 고려됐을 것이다.
미국은 일본이 중국의 군사위협에 대응할 결의를 다지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일본이 이 점에 대해 충분한 내부 검토를 거쳤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아시아의 안정 확보할 틀 만들어야▼
일본 정부는 요코다(橫田) 미군기지의 관할권과 관제권을 미국으로부터 넘겨받은 뒤 이곳에 항공자위대 총사령부를 옮겨 군민 공용, 미일 공용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미국은 요코다 기지의 안전보장 가치가 유지될 수 있을지에 강한 관심을 갖고 있다.
일본 정부는 입만 열면 ‘오키나와 기지의 부담 경감’을 주장하지만 사실은 기지개편에 관해 가급적 판을 크게 벌이지 않으려는 인상이 짙다. 미일간 주둔군지위협정의 개정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왜 동맹을 하는지’와 ‘어느 정도까지 동맹할 것인지’를 확실하게 하는 것이다.
우선 중국 문제가 있다. 일본은 대만해협 안정은 물론 중국의 동중국해 및 태평양 진출에 맞서 이 일대 해역의 안정을 지키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이 문제에서는 미일동맹에 의한 ‘건전한 세력균형’을 추구한다.
중국은 현재는 군사적 위협이 아니지만 리스크는 존재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억지력, 그것도 ‘조용한 억지력’을 갖춰야 한다. 중국과의 방위교류, 군사력 실태의 투명성 확대, 정책협의의 강화 등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다음으로 한반도 문제가 있다.
주한미군 철수계획은 미일동맹의 임무에 큰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 그런데도 여기에 대한 한미일 3국의 연계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중동, 이라크에 치우친 미군재편의 위험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고 억지력을 구축해야 한다. 동시에 6자회담을 축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해 동북아의 평화와 안전에 관한 다각적인 ‘틀 짜기’를 진행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미국과 어떻게 지내야 할까.
9·11테러 이후 격렬하게 동요하는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는 데 따르는 리스크를 생각해 둘 필요가 있다. 미군재편과 관련해 일본이 도망가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여기에는 현재의 미 국방부 지도부에 대한 불안감도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미국을 얼마나 관리할 수 있는가’는 영국 호주 일본 등 미국의 중추 동맹국들이 안고 있는 절실한 과제다.
미국 입장에서 일본이 갖는 ‘전략적 가치’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 주일미군 기지와 자위대의 이라크파병, 미사일방어(MD) 체제 도입에 그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일본의 이니셔티브와 외교력, 말하자면 ‘동맹의 힘’을 키워야 한다.
동맹관계의 핵심은 일본의 역할 강화와 자립, 미일 양국이 각자 부족한 점을 보완해 주는 것이다. 그 바탕 위에서 아시아 지역 안정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정리=박원재특파원parkwj@dogna.com
▼후나바시 요이치는…▼
후나바시 요이치는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로 일본을 대표하는 논객이다. 매주 한 차례 아사히신문에 게재되는 그의 칼럼은 국제정세의 흐름을 꿰뚫는 안목과 균형 잡힌 시각, 핵심 뉴스원의 속내가 드러나는 코멘트로 정평이 나 있다. 미국 워싱턴 정가와 뉴욕 월가, 미 국무부, 국방부의 아시아정책 담당자들 사이에서도 ‘동북아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물’로 꼽힌다. 올해 고려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로 위촉돼 취재차 한국을 들를 때마다 한일 및 미일관계와 일본의 안전보장 문제 등 국제정세 전반에 관해 강의하고 있다.
△1944년생. 도쿄대 졸업, 게이오대 정치학 박사 △1975, 1976년 미국 하버드대 니만 펠로 △아사히신문 베이징특파원, 워싱턴특파원 △미국경제연구소(IIE) 객원연구원 △1998년부터 ‘일본@세계’ 칼럼 게재 △저서 ‘냉전 후’ ‘일본의 대외구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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