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은 카자흐스탄과 러시아 방문, 추석 연휴에 이어 보름여 만인 30일 오전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회의를 주재했으나, 이날도 현안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고 김종민(金鍾民)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미국 상원에서 북한 인권법안이 통과돼 국내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지만, 이날 회의에서는 간단한 분석 보고만 있었을 뿐 토론은 벌어지지 않았다.
당장 4일부터 23일까지 국회에서는 국정감사가 열려 여야간 격돌이 예상되지만, 노 대통령은 1일 국군의 날 행사에 참석한 뒤 4∼12일에 인도 베트남 국빈방문과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참석을 위해 또다시 자리를 비울 예정이다.
국내 정치 현안에 대한 노 대통령의 침묵이 길어지는 것은 하반기로 몰려 있는 잇따른 해외 순방이 1차적인 요인이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시기를 이해찬 총리와 책임장관들을 중심으로 한 분권형 국정운영 시스템을 시험가동하는 기간으로 삼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국보법 폐지’ 발언이 원로들의 시국선언을 초래하는 등 예상보다 큰 역풍을 불러왔다는 점에서 당분간은 국내정치 현안에서 거리를 두는 것이 득이란 판단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과거사 규명 문제나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 등에 대해선 큰 가닥이 잡혔다고 보는 것 같다”며 “국회에서 입법으로 풀어야 할 사안인 만큼 새롭게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노 대통령은 또 북핵 문제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 역시 11월의 미국 대통령선거 이전에는 전환점을 찾기 어렵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정치권에서는 노 대통령이 긴 침묵을 깨뜨릴 첫 시점은 25일의 국회 시정연설이 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 관계자는 “총리 중심 국정운영 방침에 따라 이 총리가 시정연설을 대신 할 수도 있다”고 말해 침묵의 시간은 의외로 길어질지 모른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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