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나바시 요이치 칼럼]무궁화꽃은 피었는가

  • 입력 2004년 9월 30일 19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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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 만에 서울을 방문했는데 딴 나라 같았다. 왜 이리 활력이 없어진 것일까. 경제가 돌아가지 않고 투자도 부진하다. 탈북자 문제뿐 아니라 ‘탈남자(脫南者)’ 문제도 생기고 있다고 한다. 노무현 정권에 정나미가 떨어져 미국으로 빠져나가는 자산가들이다.

핵 의혹 문제도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소가 우라늄 농축과 우라늄 전환을, 다른 연구소가 플루토늄 추출을 몰래 해온 일이 드러났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신고하지 않은 채였다.

한국 외교통상부 고위관리는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탄식했다. 외교상 큰 실수임에 틀림없다. 국가 신용이 걸린 문제다. 북한이 때를 놓치지 않고 이를 구실로 6자회담을 연기했다. 뼈아픈 일이다.

한국 정부는 ‘그 연구소는 정부와 독립된 기구’ ‘추출한 농축우라늄은 극히 적은 양’ 등의 주장을 하고 있으나 오히려 불신감만 키우고 있다.

IAEA 내부에는 ‘정부가 핵을 관리, 감독할 수 없다는 말이나 마찬가지’ ‘문제는 양의 과다가 아니라 국제규정을 어긴 일인데 한국은 그런 의식이 희박하다’는 비판도 높다.

10년 전쯤의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떠올리며 불안해하는 사람도 많다. 황당무계한 내용이지만 베스트셀러가 됐다.

정부 요직을 경험한 한 대학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단지 소설이라고 넘기는 사람도 있지만 거기에 드러난 지나친 민족주의 감정을 우려한다. 한국의 국익을 해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공노명 전 외무부 장관은 남북한이 비핵선언(1991년 말) 후 세운 비핵통제위원회의 한국측 위원장이었다. 당시 그는 이번에 농축우라늄 실험을 한 연구소를 찾았다. 비핵선언으로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추출 실험을 못하게 된 연구원들이 “일본은 괜찮고 한국은 안 된다는 건 잘못”이라며 불평하던 일을 그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일본은 IAEA의 강력한 사찰 체제 아래 이 같은 실험을 인정받아 왔다. 그러나 한국은 실험을 포기했다. 미국의 압력에 대한 분노, 미국의 이중적 기준에 대한 항의도 내심 있었을 것이다.

한국 정부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강조하지만 연구소를 관장하는 과학기술부가 과연 전혀 몰랐을까. 연구소 소장 등의 책임 문제는 어떻게 될까. 이러저런 불투명한 점은 있지만 아마도 노무현 정권이나 김대중 정권은 핵무기 계획을 추진할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이것만은 믿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무궁화꽃은 기술적으로나 심정적으로 이미 피었는지 모른다. 한국의 차별 대우에 분노한 연구자들이 ‘꽃을 피워내는 능력’을 반드시 확인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핵 연구 능력에 관한 한 일본의 수준도 높다. ‘핵확산금지조약(NPT)’만큼 불공평한 체제는 없지만 한국과 일본 모두 국익을 위해 이를 지지하고 IAEA의 사찰을 받아 왔다.

그 꽃은 결국 사람의 뇌리에 피는 것이다. 마음속에는 봉오리가 움튼다. 그것을 꽃으로 피게 할 것인지 봉오리인 채로 놔둘 것인지는 정치가의 의지에 달려 있다.

한국은 이번 일을 계기로 비핵 원칙을 거듭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익을 위해서다. 또 이와 함께 6자회담을 통한 북한 비핵화와 한미일 안보협력이 더 중요한 문제로 부각됐다. 서울발 긴급 자명종이 울리고 있다.

후나바시 요이치 일본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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