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북한인권법안 이렇게 본다]“쌀-정보 제공이 최대 목표”

  • 입력 2004년 10월 3일 18시 14분



《미국 상원은 지난달 30일 북한인권법안을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그러나 상원이 하원 통과안의 일부 조항을 삭제하거나 완화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북한 민주화의 방식에 대해서는 미국 정치권에서도 여러 가지 의견이 있다. 동아일보는 법안 통과를 위해 의원들을 대상으로 로비활동을 벌였던 수전 숄티 디펜스포럼 회장과 이 법에 비판적 견해를 보였던 ‘바른 입법을 위한 친구들 위원회’의 카린 리 선임연구원을 초청해 대담을 가졌다. 대담은 1일 미 워싱턴 맨스필드 재단 회의실에서 이 재단 고든 플레이크 사무국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고든 플레이크=미 상원이 9월 말 북한인권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정치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

▽수전 숄티=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민주, 공화당이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것은 미 의회가 북한의 인권 침해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웅변하는 것이다. 그동안 북한 인권 문제는 북-미 접촉에서 뒷전(secondary)으로 밀려나 있었다. 이제 인권 문제는 테이블 전면에 놓여야 한다.

▽카린 리=의회의 만장일치는 종종 정치적 산물이기도 하기 때문에 상원의 만장일치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이 법이 북한 인권에 실질적인 개선을 가져올지 의문이다. 그동안 북한 민주화를 위해 이런저런 예산을 책정하는 법이 여러 개 만들어졌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일부 북한 사람은 ‘나도 미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북한 내 인권 문제가 구체적으로 개선되지는 않을 것이다.

▽플레이크=사실 보편적 가치를 강조하는 이번 인권법에 대한 반대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워싱턴 일각에서는 한때 ‘이 법에 반대하는 사람은 서울로 가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당사자인 한국은 이 사안을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숄티=나는 (한국측이) 미 정부와 의회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일부 의원들이 ‘법이 통과되면 남북관계가 훼손된다’는 편지를 미 정치권에 보내기도 했다. 미 국무부에서도 북한을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시각은 양분돼 있다. 노무현(盧武鉉) 정부는 북한 인권 문제가 전면에 거론되는 것에 반대한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한국 정부는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 올 4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한국은 북한 인권결의안에 기권하지 말았어야 했다. 한국인들은 훗날 ‘당신은 2004년 북한 동포가 굶고 인권이 유린당할 때 어디서 뭘 했느냐’는 물음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리=한국과 미국은 한 발씩 양보해야 한다. 미국은 북한과 관계 정상화를 시도해야 한다. 북한 인권 문제는 심각하지만 최우선 순위라고 보기는 어렵다. 완전히 잊어 버리자는 것이 아니다. 바구니에 잘 담아 두었다가 적절한 시점에 꺼내면 된다.

▽플레이크=법 중 특히 눈길을 끄는 조항이 있나.

▽숄티=이 법은 쌀 공급 외에 북한에 바깥세상의 정보 제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라디오 보내기 운동 지원 조항은 의미가 크다. 최악의 인권침해국인 북한은 외부세계와 단절돼 있어 미국이 북한 주민에게 다가가야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한 주민에게 ‘미국이 관심 갖는 것은 우리의 핵뿐’이라고 선전하고 있는데 실제로 잘 먹혀들어가고 있다. 미국이 북한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질과 기본권리 구현에 관심이 있다는 점을 알려야 한다.

▽리=나는 법에 담긴 내용보다 상원 통과 과정에서 없어지거나 완화된 내용에 주목하고 싶다. 폐기된 북한자유화법안은 미 중앙정보국(CIA)이 북-중 국경에서 탈북자를 인터뷰하도록 돼 있지만, 이는 탈북자의 신변을 위협하는 내용이다. 북한인이 대량살상무기(WMD) 정보를 가져오면 보상하는 내용도 역시 탈북자가 북한으로 다시 들어가 ‘잘못된 정보’를 갖고 나오게 할 우려가 있다. 동맹국인 한국에 대한 비외교적 비난이 빠진 점도 다행이다. 특히 목숨을 건 탈북자가 정치게임에 이용될 여지를 줄였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플레이크=그렇다면 이 법이 실효성을 갖기 위한 방안은 뭔가.

▽숄티=효력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중국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중국은 이 법이 북한 붕괴용이라는 생각을 갖지 말아야 한다.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를 기대하는 것은 도덕적이지 못하다. 한국의 부담과 비용이 너무 크고 대규모 혼란이 예상된다. 그러나 중국은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의 탈북자 면담을 거부할 정도로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플레이크=북한 인권 문제를 다룰 때 정권 교체나 정권 붕괴 이야기를 거론하지 않는 게 좋을 듯하다. 북한은 미국의 인권운동가가 ‘인권’을 말할 때 ‘북한 정권 붕괴’와 동의어로 해석한다. 결과적으로 붕괴 언급이 외교적으로 북한을 포용하는 정책을 어렵게 만든다.

▽리=나는 북한 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법이 무엇을 바꿀지 의문이다. 북한에 라디오를 보내는 것이 북한을 바꿀까. 북한에서 북한 방송이 아닌 방송 청취는 범죄로 규정돼 있다. 이런 위험을 지우는 것이 좋은지 생각해 봐야 한다. 북한을 방문한 사람들은 “북한은 달라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미 의회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북핵 협상을 타결하면 의회가 돈을 대겠다”는 메시지를 천명하는 것이 제대로 된 순서다. 북한인들을 미국에 불러서 공부시키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그런 예산을 부담하겠다고 미 의회가 선언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북한을 자극하는 인권법안 통과보다 효과적인 수단일 수 있다.

▽플레이크=미 의회는 연간 2400만달러까지 탈북자 지원그룹에 예산지원이 가능하도록 했다. 사용처는 어떻게 되나.

▽숄티=미국 정부의 예산은 한국의 탈북자 지원단체, 미국 인권운동가 그룹 등의 활동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탈북자 수용소를 세우는 것이 시급하다. 중국 내 건립은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몽골 및 동남아 국가가 이들 시설을 설립하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다.

▽리=이번 법안은 의회가 정부에 예산 배정 권한을 부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구체적인 용도는 2005 회계연도 예산에서 어떻게 편성되는지를 기다려 봐야 한다.

▽플레이크=북한 문제의 화두는 인권과 핵 문제다. 이 두 가지를 어떻게 풀어 가야 할까.

▽숄티=두 사안은 별개가 아니다. 같은 지도자가 핵도 만들고 인권도 침해한다는 점에서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인권 문제를 빼고 어떻게 핵 문제를 거론하나. 나는 어떤 정책도 탈북자를 지금보다 더 위험하게 만들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북한을 몰아붙이면 부작용이 생긴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수백만명이 굶고 있으며 정치범 수용소가 존재한다. 인권이 존재하지 않는 북한을 놓고 ‘북한 인권’이란 말을 쓰는 것 자체가 모순된 이야기다. 11월 서울에서 북한 홀로코스트(대학살) 전시회를 연다. 나치 독일이 유대인에게 했던 학살의 장면을 젊은 한국인은 목격하게 될 것이다. 오해 없기 바란다. 나는 김 위원장 제거에 관심이 없다. 평화적인 북한 정권교체를 기대할 뿐이다.

▽리=미국은 이중 잣대를 갖고 있다. 미국은 파키스탄의 핵 확산 문제, 군부정권에 의한 인권 침해 사례에 침묵하고 있다. 핵 문제를 우선 푸는 것이 순서다. 핵무기 사용에 따른 엄청난 피해가 다수에게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 핵문제야말로 넓은 의미에서 북한의 인권 문제와 직결된다.

▽플레이크=다양한 견해가 존재하지만, 법안은 최종적으로 확정될 전망이다. 앞으로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법안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나.

▽리=이 법안의 성패는 정부가 지명할 특사(special envoy)에 달려 있다. 유엔 인권위가 북한 인권조사관으로 지명한 태국 법학자의 활동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의 특사는 북한에 적대적이지 않으면서도 단호한 방침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인 인사가 지명된 뒤 북한 인권 문제에 정치적으로 접근하면 북한의 인권 문제가 뒷걸음질칠 수 있다.

▼참석자 약력▼

▽수전 숄티 디펜스 포럼 회장=탈북자의 미국 의회 증언을 끊임없이 지원해 온 미국의 대표적인 북한인권 운동가. 지난해에는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의 미국 방문을 성사시켰다. 북한인권법안이 미 하원(7월) 및 상원(9월)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인 외곽 지원을 했다. 북한 민주화와 아프리카 서부 사하라 지역 난민보호를 필생의 과제로 삼고 있다.

▽카린 리 ‘바른 입법을 위한 친구들 위원회(FCNL·The Friends Committee on National Legislation)’ 선임연구원=FCNL은 미 의회 입법 활동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로비단체이자 정책을 연구하는 비영리 기구. 대북 포용정책을 지지한다. 리 선임연구원은 FCNL에서 동아시아 정책 분야를 맡고 있다. 북한인권법의 전 단계였던 북한자유화법안의 대북 강경조치 조항에 대한 문제점에 대해 의원들을 설득해 이 법안이 의회에서 폐기되도록 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고든 플레이크 맨스필드 재단 사무국장=브링엄영대에서 학부와 석사과정을 마친 뒤 워싱턴 소재 한국경제연구소(KEIA) 연구부장, 미 대서양위원회 연구원을 지냈다. 지난해 스콧 스나이더 아시아재단 당시 한국사무소장과 함께 북한 내 비정부기구(NGO) 활동의 성과에 대한 책(Paved with Good Intentions:the NGO Experience in North Korea)을 썼다.

정리=김승련 워싱턴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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