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방형남 칼럼]‘개구리 공화국’

  • 입력 2004년 10월 6일 18시 53분


결실과 단풍의 계절 10월이다. 농부는 옹골찬 열매를 거두고, 관광객은 울긋불긋 화려한 경치를 감상하며 즐거워한다. 그들 가운데 현명한 사람은 수확과 단풍의 뿌리를 함께 생각한다. 봄부터 여름을 거쳐 가을에 이르기까지 흘린 땀이 없었다면 풍성한 결실은 꿈도 꾸지 못했지. 충분한 수분과 햇볕 자양분을 섭취하지 못한 나무는 고운 자태를 뽐낼 수 없지. 그런 뒤에 현자(賢者)는 자신에게 눈을 돌려 지나간 봄과 여름에 무엇을 했느냐고 자문한다.

이 가을,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면 어떨까. 북한 인권문제는 요즘 곱씹어보기 좋은 주제다. 미국 의회가 북한인권법안을 채택하자 북한은 “미국과 상종할 명분이 없어졌다”며 펄펄 뛴다. 정부는 미국과 북한 사이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곤혹스러운 일이지만 우리의 인권 사계(四季)를 돌아보면 해답이 나온다.

▼외국의 인권 간섭은 ‘쓴 약’ ▼

1979년 6월 29일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서울에 왔다. 다음 날 청와대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카터 대통령은 ‘험악한 언쟁’(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 대사의 회고)을 벌였다. 미군 철군과 한국의 인권상황에 대한 견해차가 회담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카터는 국빈만찬에서도 인권문제를 꺼냈다. “한국에는 유능하고 활기에 찬 국민이 힘을 합쳐 이룬 눈부신 발전의 뚜렷한 증거가 있다. 나는 이런 성취는 정치적 자유와 인권을 향한 인간의 기본염원에 대한 인식을 통해 유사한 진전과 조화를 이룰 수 있으리라는 것을 확신한다.” 박 대통령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글라이스틴은 한국 외무장관이 안절부절 좌불안석이었다고 회고록에 썼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도 인권문제는 한국외교의 최대 약점이었다. 대통령이 선진국을 방문할 때면 수행원들은 한국의 인권상황이 거론될까봐 노심초사했다. 충성스러운 관리들이 온갖 외교적 노력을 했지만 독일의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대통령 같은 이는 끝내 인권문제를 거론하며 전 대통령을 압박했다.

1983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전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도 미국은 인권을 문제 삼았다. 조지 슐츠 국무장관은 양국 정상의 비공개 대화 중에 끼어들어 인권 관련 공동성명 문안을 내밀었다. 공동성명 제9항이 된 ‘양국 정상은 자유와 개방 및 정치안정에 기여하는 제도의 수호와 강화의 중요성을 확인했다’라는 대목이었다. 레이건과 덕담을 나누던 전 대통령은 엉겁결에 미국측 제안을 수용했다.

외국 지도자들의 발언과 외교문서에 적힌 글들은 온건해 보이지만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민주화와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국제적 압력이자 억압받는 한국 국민에 대한 격려였다. 외국의 간섭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입에 쓴 약과 같은 것이었다. 집권층은 모욕감을 느꼈겠지만 민주주의와 인간다운 삶을 열망하던 국민은 용기와 희망을 얻었다.

먼 옛날 얘기가 아니다. 불과 20여년 전 일이다. 30대 이상이면 그때 인권상황이 어땠는지 생생히 기억한다.

▼북한 인권 누가 외면하나▼

그런 인고(忍苦)의 계절을 보낸 우리가 1970, 80년대 남한보다 훨씬 혹독한 북한의 인권탄압을 모르는 체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북한의 입장을 배려해야 한다며 입을 다물라고 한다. 독재정권 시절 인권 유린의 희생자요, 민주화와 인권 신장을 위해 싸운 투사였다고 자랑하는 집권세력 인사들 중에는 미국을 향해 삿대질을 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올챙이 시절을 까맣게 잊어버린 개구리가 아닌가. 일제강점기 과거사까지 규명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아직도 살아있는 최근세사는 잊은 척한다면 오히려 개구리보다 못한 인생들이다. 훗날 누군가가 “당신은 북한동포가 압제에 시달릴 때 무얼 했느냐”고 물을 것이다. 그때 무어라고 대답하려는가.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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