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보다 히틀러가 훨씬 위대한 거 아니에요?” 인도의 영자지 ‘더 타임스 오브 인디아’가 6일 중고교생들을 인터뷰한 기사의 한 대목이다. 역사교과서에 그렇게 묘사됐기 때문이란다. 여론은 다섯 달 전 야당으로 추락한 과거 정권이 자기들의 힌두 민족주의 이념을 정당화하기위해 역사를 왜곡했다고 본다. 새 정부는 즉각 ‘해독작업’에 들어갔다. 역사가, 교육이 정치에 이용돼선 안 된다는 우려도 쏟아진다. 아, 세상은 왜 이리 비슷한가. ▼정치논리가 매사에 끼어들면▼ 인도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두 나라가 경제협력을 통해 아시아의 등불을 함께 밝혀 가자”고 했다는 기사가 6일자 신문에 났다. 하지만 경제보다 정치 논리가 우선하는 건 우리나 인도나 마찬가지다. 둘 다, 혹은 둘 중 하나가 등불을 밝히지 못할 수 있다는 비상깜빡이가 번쩍댄다. 중국에 이어 눈부시게 성장해 온 인도가 신경제의 부메랑을 맞은 것이 5월 총선이었다. 정보기술(IT) 서비스산업이 발전하면서 잠재구매력 세계 4위로 떠올랐지만 돈이라곤 구경도 못한 대다수 빈민층이 정권을 갈아 버린 것이다. 새 집권층의 모토는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다. 만모한 싱 총리는 국가통제의 오랜 사회주의경제로 위기에 빠졌던 1991년, 시장경제를 도입해 나라를 살린 ‘개혁의 아버지’였다. 그런데 지금은 성장만 하면 뭐하느냐며 빈민을 위한 정치를 다짐한다. 좋은 얘기다. 문제는 모두 잘살게 한다는 선의의 정책이 되레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는 데 있다. 농업보조금 제도가 대표적이다. 전체의 65%인 농촌 인구를 위해 정부는 막대한 보조금을 뿌려 수확물을 사들이고 농업용수와 비료까지 준다. 그러나 이를 이용할 수 있는 건 소수의 부농(富農)뿐, 나머지는 관개시설이 안 된 75%의 논밭에서 하늘만 보며 배를 곯아야 한다. 왜 정부가 관개시설을 못하느냐. 돈이 없어서다. 허술하고 온정적인 제도와 관료의 무능 부패 탓에 직접세를 내는 인구는 1%에 불과하다. 재정수입은 중간에서 대부분 새는 온갖 보조금과 너무 많은 공무원의 봉급, 밀린 재정적자 이자로 거의 다 나간다. 수도 도로 교육 의료 등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서비스도 못할 정도다. 인도 정부가 외국인투자를 간절히 바라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집권 의회당과 연합정권을 이룬 좌파가 사사건건 발목을 잡고 있다. 외국인투자비율과 강성 노동법을 고치는 것도, 비효율적인 국영기업 민영화와 보조금 삭감도 반대한다. 민중 편에 선다는 좌파의 존재이유에서다. 투자자들이 가장 경계하는 게 바로 이 점이다. 지난달 미국을 방문한 총리와 재무장관은 “개혁이 후퇴하는 일은 없다”고 입이 닳도록 외쳐야 했다. 여기서 개혁이란 시장경제적 개혁을 말한다. 글로벌 경제시대엔 이 외엔 살길이 없다. 그래도 가뭄까지 겹쳐 인도의 경제성장률은 올해 목표치인 8%에서 6%대로 내려앉았다. 이 나라가 계속 빛날 수 있을지에 대해 벌써 회의적 반응이 나돌고 있다. 정치적으로 옳은 ‘설탕정책’이 다른 분야, 특히 경제엔 독약임을 인도는 보여 준다. 국민을 위한다는 정치인의 수사(修辭)는 ‘그래야 내 권력이 오래 간다’는 속셈의 표현일 뿐이다. 구석구석 열심히 한다고 다가 아니다. 방향을 잘못 잡거나 무능한데도 오만 일에 끼어들며 미련하게 뛰는 정부는 나라를 가속도로 추락시킨다. ▼정부, 당신들만 잘하면 된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최근 저서 ‘국가건설’에서 나라가 할 일의 우선순위를 매겼다. 도로 수도 등 인프라와 국방, 법과 질서, 사유재산 보호, 거시경제관리 등의 기본 기능을 빈틈없이 집행하는 강한 정부가 최고인 반면 이것도 못하면서 산업정책, 부의 재분배의 안 해도 될 일까지 나서는 오지랖 넓은 정부가 문제라고 했다. 기본을 못하는 국가에서 경제가 잘되는 건 불가능하다. 밖에선 기업을 생각하는 척하고, 들어오면 정치논리를 휘날리는 대통령은 그만 보고 싶다. 잘하고 있고, 잘하려는 시장과 개인을 끌어내리지 않으면 고맙겠다. 아시아의 등불까진 안 돼도 괜찮다. 희망의 등불만 끄지 말아 준다면.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