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꼭꼭 숨긴 北건물 화보집▼
남한 건축가인들 북한 건축에 대해 알고 있다고 나서기는 어렵다. 북한이 발행하는 화보집은 건축으로 가득하다. 만수대예술극장, 인민문화궁전, 인민대학습당 등 북한이 자랑하는 공공건물들은 과연 우람하다. 그림으로 전해지는 평양 도시계획의 화끈함에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전체 국민에게 무상으로 주거를 공급하는 것이 사회주의 국가의 이상이다. 북한에서는 평양 신도시의 살림집 모습을 화보에 담아 뿌린다.
평양 창광거리, 경흥거리의 고층 살림집들은 남한으로 치면 강남의 주상복합아파트에 해당한다. 이 둘 사이의 공통점은 초현실적이라는 것이다. 남한의 아파트는 괴상한 기반시설물, 불법 간판, 불법 주차로 범벅이 된 도시에 세워지면서도 인테리어의 화려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썰렁하게 빈 거리에 세워진 북한의 고층 살림집은 그 크기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북한 화보집의 건축이 감동스럽지 않은 것은 인간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건축은 정치 구호를 실어 나르는 도구가 아니다. 인간을 담는 그릇이다. 북한 화보집의 건물과 도시에서는 피사체로서의 인간만 보인다. 그런 건물과 도시는 자신들이 완벽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했다는 주장처럼 공허하기만 하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북한의 일상이고 그 일상을 담는 공간이다. 그러나 실제 북한의 주거 모습은 꼭꼭 감춰져서 잘 보이지 않는다. 간간이 드러나는 자료의 내용은 생경하다. 북한의 살림집 도면에는 위생실, 내민대, 물림퇴와 같은 생소한 이름들이 가득하다. 그 평면의 모습도 남쪽 아파트와 전혀 다르다. 당이 원하는 대로, 자본이 원하는 대로 각각 만들어 온 건축은 50년 동안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다른 길을 걸어 왔다.
그간 우리는 통일을 이야기해 왔다. 통일은 정치적으로 시작되어도 문화적으로 마무리되어야 할 것이다. 일상생활의 통일은 건축을 매개로 할 것이다. 많이 알고 시작할수록 부작용도 적다. 북한에 관한 정보의 대부분은 정부에서 운영하는 자료실에서 독점하고 있다.
이 자료실들은 아직도 다분히 폐쇄적이다. 북한의 출판사에서 발행한 ‘조선건축사’는 남한의 도서전시회에서 팔리고 김정일 저술의 ‘건축예술론’은 컴퓨터 파일로 떠돌아다닌다. 그런데 정부 자료실에서는 복사 한 장 하려 해도 도장 찍힌 서류를 내밀어야 한다. 북한에 관한 자료는 볼수록 동경심이 아니라 안타까움이 커진다. 그러기에 좀 더 자신 있게, 그리고 넓게 공개돼야 한다.
용천역 폭발이 일어났을 때 사진 몇 장이 보도됐다. 의사들에게는 다친 어린이들의 모습이 보였을 것이다. 건축가들에게는 무너진 집이 보였다. 그 벽에서 단열재가 보이지 않았다. 북한은 남한보다 당연히 더 추운 겨울을 보낸다. 그런 곳에 지어지는 건물의 벽에 단열재가 없었다. 복구 중의 사진 역시 다르지 않았다.
▼정부 독점자료 가급적 공개해야▼
남한은 북한에 이런저런 구호물자를 보냈다. 그 속에 단열재가 포함됐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단열재는 싸다. 그러나 건물의 보온 성능을 향상시키는 데는 그 가격을 훨씬 넘는 역할을 한다. 단열재를 넣겠다고 건물을 새로 지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기존 건물의 외벽에 단열재를 붙이고 합성수지를 한 겹 더 입히는 방법도 있다. 건물의 외장 방법으로 가장 값싼 방법이고 단열효과는 오히려 더 좋다. 단열재로는 전투기를 움직일 걱정도 없다.
가을이 왔다. 북한의 산은 떨어질 낙엽도 없이 헐벗어 있다. 우람한 고층 살림집 뒤편으로 단열재 없는 건물에 사는 북한 주민들이 언뜻언뜻 보인다. 그들에게 알싸한 새벽 공기가 어떻게 느껴질지 정말 모르겠다. 아직도 결론은 그렇다.
서현 한양대 교수·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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