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영용]‘기업이 나라’라고 생각한다면

  • 입력 2004년 10월 13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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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며칠 전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현지 우리 기업의 활약상을 보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기업 활동에 걸림돌이 되는 여러 가지 애로사항을 풀어가는 데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이전에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도 “기업이 나라”라며 기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노 대통령이 베트남에서 “국내 산업공동화가 우려되지만 기업들의 해외 진출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한 발언은 그 뜻이 좀 모호하지만, 정부가 기업을 옥죄지만 않는다면 기업의 국내외 분포는 적절하게 이뤄질 것이므로 이를 크게 문제 삼을 이유는 없을 듯하다.

▼대통령 발언 정책으로 나타나야▼

어쨌든 최근 노 대통령이 해외에서 한 발언을 보면, 기업관에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듯하다. 앞으로의 과제는 노 대통령의 이런 발언이 시장 신뢰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일회용 찬사가 아니라 진심으로 이 나라 경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기업을 생각하고 기업가 정신을 존중한다는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여태까지 시장 불안의 진원지였던 정부의 경제정책이 시장을 안정시키는 방향으로 전환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향후 경제정책에 그러한 기업관이 배어날 것임을 기대하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기업에 특별한 배려를 해 줘야 한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다만 기업을 일으키고 국부 창출의 초석을 다져 온 기업가들을 ‘가진 자’, ‘기득권층’으로 치부해 적대시하는 태도를 버리고 이들이 자유롭게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만 조성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여건이란 별다른 게 아니라 정부가 그저 ‘방관자’의 위치에 머무르는 것이다. 경제가 어려워질 때면 정부가 나서서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지만 특단의 대책일수록 특별한 문제들을 야기해 왔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대통령의 발언이 시장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구체적인 정책 변화가 있어야 한다. 우선 자국 기업을 외국 기업에 대해 역차별하는 공정거래법부터 제대로 고치면 좋겠다. 공정거래법은 독점을 비롯한 경제력 집중을 최대의 문제로 삼고 있다. 그러나 경제력 집중이 문제되는 것은 정부에 의한 인위적인 진입장벽이 있을 때다. 진입장벽이 없다면, 시장에 기업이 하나만 존재한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 효율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논의 중인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경제력 집중 문제를 더욱 강하게 다루고 있다. 대규모 기업집단의 금융계열사 보유 지분의 의결권 한도를 30%에서 15%로 낮추고, 계열기업간 출자총액제한을 그대로 유지하는 내용인 것이다. 그 결과 우호지분 확보가 어려울 뿐 아니라 그나마 그룹 지분의 의결권 감소가 불가피해지기 때문에 한국의 유수 기업들이 외국 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에 더 많이 노출되고 있다. 안정적 경영권 확보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일관된 언행이 市場불안 불식▼

경영권 하나만 놓고 보면 충분한 지분을 확보하지 못한 책임은 해당 기업에 있다. 그러나 한국의 기업은 당시의 시장 환경과 상거래를 둘러싼 법제도 하에서 투자 다변화를 통해 여러 새로운 사업 기회를 포착해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경쟁력 있는 존재로 커 온 것이다. 경제력 집중이라는, 용도 폐기해야 할 개념에 사로잡혀 우리의 우량기업을 법을 고쳐가면서까지 외국 자본의 먹잇감으로 바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의 말은 정부정책의 틀을 의미하기 때문에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말과 실제 정책이 따로 가는 일관성 없는 언행은 시장 불안의 가장 큰 요인이 된다. 금년에는 정부정책에 일관성이 없으면 그 정책은 실패한다는 것을 입증한 공로로 두 명의 학자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대통령의 일관성 있는 발언과 정책을 기대한다.

김영용 전남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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