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피감기관▼
13일 한국언론재단에 대한 국회 문화관광위의 국정감사에서 문화관광부의 한 고위 공직자는 “내 일도 아닌데 왜 나오라는지 모르겠다”며 국감 시작 2시간 만에 자리를 떴다. 예전 같으면 위원장이 종료를 선언할 때까지 공무원들은 대부분 자리를 지켰다.
12일 방송위원회 국감에서도 이미경(李美卿) 문광위원장이 “증인으로 채택되지 않은 방송위원들은 국감장에서 나가도 좋다”고 하자마자 몇몇 방송위원들이 자리를 떴다.
피감 기관장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13일 한국방송광고공사에 대한 국감에서 김근(金槿) 사장은 한나라당 이재웅(李在雄) 의원에게 “흥분하지 말라”고 했다가 사과 요구를 받기도 했다.
피감기관들의 ‘접대’도 많이 줄었다. 10년 경력의 한 보좌관은 “피감기관에서 국감이 진행될 경우 지난해만 해도 관계자들이 점심이라도 대접하겠다며 밖으로 끌고 나가는 경우가 많았으나 올해는 주로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했다”고 말했다.
▼뒤바뀐 여야▼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이슈에 대해서는 여야의 입장이 뒤바뀐 경우가 많았다. 특히 열린우리당 초·재선 의원들은 정부의 국감 준비 태도를 강하게 질타했다.
6일 산업자원위의 한국가스공사에 대한 국감 도중 마이크가 꺼져 국감이 정회되는 소동이 일자 열린우리당 간사인 오영식(吳泳食) 의원은 “대단히 불미스럽고 안타까운 일로 책임자에 대한 응당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소리를 높여 야당 의원들을 머쓱하게 했다.
4일 농림해양수산위의 농림부 국감에서는 열린우리당 간사인 조일현(曺馹鉉) 의원이 “농협에 급여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했으나 농협중앙회가 허위 자료를 내고, 조합장과 농협직원들은 모욕적인 압력과 비방, 인터넷을 통한 인신공격, 심야의 협박전화 등을 하는 등 조직적으로 저항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열린우리당 강성종(康聖鐘) 의원은 7일 정보통신부 국감에서 정통부가 자료 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는 것에 관해 “여당이라 대충 넘어갈 줄 알았느냐”며 진대제(陳大濟) 장관을 압박했다.
▼사라진 ‘저격수’▼
재경위 정무위 등을 중심으로 정권 핵심의 비리 의혹을 제기했던 야당의 저격수가 이번 국감에서 거의 종적을 감췄다. 한나라당 이재오(李在五·문광위) 홍준표(洪準杓·통일외교통상위) 정형근(鄭亨根·보건복지위) 의원 등 ‘왕년의 저격수’들은 국감 전 “저격수 노릇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하고 소관 상임위도 폭로거리가 상대적으로 적은 곳을 택했다. 이들의 뒤를 이어 ‘저격수’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의원들은 거의 없다.
이에 대해 “정쟁형 국감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긍정적 해석이 많지만 주요 현안에 대한 야당의 정보력 부재에 따른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편 공동 명의의 정책자료집과 보도자료를 통해 대안을 제시하는 초·재선 의원들도 늘었다. 열린우리당 친노(親盧) 386 의원들이 주축인 ‘의정연구센터’ 소속 이광재(李光宰) 서갑원(徐甲源) 의원 등은 중소기업의 애로 사항을 분야별로 청취해 해결 과제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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